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50907020024393

영남일보TV

[단상지대] 보자기, 삶을 감싸는 지혜

2025-09-08 06:00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보자기는 엄마의 품이다.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 감싸 안는다. 제멋대로 불거져 나온 것조차 품어내는 넉넉함, 그것이 보자기의 본모습이다. 그것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삶을 이어주는 지혜다. 그 지혜는 생활 속에 스며 있었고, 언제나 친정엄마의 손길과 함께했다.


주말 아침, 어김없이 엄마의 목소리다.


"찬통하고 바뿌재 언제 다 가 올래?"


엄마에게는 반찬보다 통이 더 소중하다. 변함없는 잔소리 속에는 물건을 아끼고 지키라는 삶의 지혜가 배어 있다. 직접 농사지은 과일과 채소를 박스에 담고, 마지막에는 보자기로 정성껏 싸 주신다. 그 보자기를 풀 때면 아릿해진다. 알록달록한 보자기의 빛깔과 결은 엄마의 미소와 품을 닮아, 자꾸만 어루만지게 된다.


엄마의 손길이 보여주듯, 보자기는 생활의 도구를 넘어 정성과 예절을 담아낸 문화적 상징이었다. 남에게 물건을 건넬 때조차 예를 갖췄다. 예컨대 출가하는 딸의 혼수 물목을 준비할 때도 수십 개의 보자기를 마련했다. 보자기에 곱게 싸는 일은 정성과 복을 담아 보내는 어머니의 지혜였다. 그렇게 감싼 보자기는 곧 예(禮)이자, 내 마음을 전하는 표식이었다.


이런 의미는 옛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조선 후기 문헌에는 보자기를 '복(袱)'이라 적었는데, 같은 음의 '복(福)'과 연결해 '복을 담는 그릇'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보자기는 삶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문화적 세계관과도 닿아 있다. 서양이 '상자 문화'라면, 한국은 '보자기 문화'다. 상자가 경계를 나누고 구획을 짓는 도구라면, 보자기는 모자람을 채우고 넘침까지 품어내며 이어준다. 작은 천 조각을 이어 큰 보자기를 만들듯, 부족한 것을 서로 나누어 메우는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반듯하지 않아도 함께 감싸 안을 때, 보자기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그 넉넉함 속에서 우리는 온유와 품격을 배운다.


조각보가 그 대표적 예다. 옷을 짓고 남은 자투리 천을 모아 이어 붙였지만, 검소의 흔적은 오히려 새로운 질서를 낳았다. 작은 조각들이 어울려 만들어낸 자유로운 색과 면 분할은 현대 추상화와 나란히 놓아도 손색이 없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겸양과 절제의 미덕', '음양오행과 무속적 세계관' 등 한국적 미학을 읽어낸다. 결국 조각보는 삶의 자락에서 빚어져 세대를 이어온 문화 예술이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일회용품을 줄이려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보자기는 친환경 포장재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퓨로시키(furoshiki)'라 불리며 실용과 예절을 아우르는 생활문화로 자리했다. 한국에서도 전통 문양과 색채를 입힌 보자기는 여행길의 선물로 사랑받고 있다. 대구 서문시장의 한 책방에서는 지금도 책을 보자기에 싸 주며 옛 풍습을 이어간다. 그렇게 싸인 책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정성과 이야기를 담은 선물꾸러미가 된다.


보자기는 잊힌 전통이 아니라, 여전히 이어지는 삶의 지혜다. 오늘날에도 '마음을 싸는 문화'로 살아 있다. 선물을 포장할 때 종이 대신 보자기를 쓴다면, 물건뿐 아니라 정성과 배려, 그리고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바람까지 담긴다. 작은 보자기 하나가 지구를 품는 따뜻한 실천이 된다.


그래서일까. 어머니의 잔소리를 떠올리며 문득 깨닫는다. 삶을 보듬는 힘은 언제나 사소한 일상에 깃들어 있음을. 보자기는 바로 그런 힘을 품은 지혜의 산물이다. 나는 오늘도 빛깔 고운보자기를 펼쳐 엄마의 마음을 마주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