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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News Views] 연쇄파업·기업엑소더스·탈노동 가속 ‘노란봉투법의 역설’

2025-09-08 17:32

법 시행 후폭풍…기업탈출·일자리불안 심화
“피지컬 AI 가속땐 노동자 설 자리는 어디에”
노사 갈등 해소 위한 정부의 중재 노력 필요


지난 3일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열린 현대차 노조의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일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열린 현대차 노조의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일명 '노란봉투법'이 오히려 일자리 축소, 기업 이탈을 부추기는 역설을 맞이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파업이 잇따르고 기업은 한국을 떠나거나 자동화에 속도를 내면서 법으로 지키려던 고용 기반이 되레 흔들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노란봉투법이 노동시장 불공정성을 시정하기 위한 국가 개입인 만큼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 노란봉투법이란


지난달 24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의 정식 명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다. 주요 골자는 하청 노동자의 원청 대상 교섭 허용과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청 노동자의 원청 대상 교섭을 허용함에 따라 지금까지는 하청업체 직원들이 소속 회사와만 교섭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원청 기업에도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또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면서 파업 등 쟁의행위로 기업이 손실을 입더라도, 기업이 무분별하게 손배·가압류를 청구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노조 연쇄파업 현실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조의 쟁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파업 도미노가 시작됐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지난 3일부터 7년 만에 부분파업에 돌입해 울산공장 생산라인에 차질이 우려된다. 더불어 아산·전주공장까지 파업에 동참했다.


HD현대중공업 노조 역시 합병과 고용 불안을 이유로 공동 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임금·성과급을 넘어 정년 연장, 주 4.5일제, 신사업 통보 의무 등 경영상의 판단까지 요구 범위를 확대하면서 기업 불확실성을 더욱 키웠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하청노조는 정의선 회장 등 사측 대표 3인을 '파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SK에코플랜트의 반도체 현장 추가 고용을 요구하며 본사 앞 시위를 예고했다.


◆기업 '코리아 엑소더스'


잇따른 파업이 기업들을 한국 밖으로 내몰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선 외국계 기업의 한국 철수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GM 노조가 특근 거부 및 부분 파업을 이어가자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사장은 "노란봉투법이 현실화할 경우 본사가 한국GM을 재평가할 수 있다"며 사실상 철수 가능성을 내비쳤다. 주한미국·유럽상공회의소도 외국인투자기업의 한국 사업 지속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은 바 있다.


국내 기업의 탈출 가능성도 감지된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로봇 생산공장 신설을 포함해 미국 내 투자를 210억 달러에서 260억 달러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화·HD현대 역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 부흥 프로젝트)'에 발맞춰 미국 중심의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외 기업 40% 이상이 "사업 축소·철수·폐지를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미국발 '15% 관세' 부담까지 겹치며 기업 수출여건이 악화하고 있는 것도 코리아 엑소더스 분위기를 부채질하는 모습이다. 미국발 관세와 더불어 국내 규제 강화, 노조 리스크까지 확대되며 한국에서 사업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옅어지고 있는 것이다. 투자와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국내 정책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피지컬AI 확산과 지방 중기


탈노동·자동화가 가속화하면서 일자리를 보호하려는 정부정책이 오히려 국내 일자리를 감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실제 노란봉투법 통과 직후 주식시장에서 레인보우로보틱스·두산로보틱스 등 로봇주가 급등하고, 로봇 ETF(상장지수펀드)까지 상승세를 탔다. 기업이 노조도 만들지 않고 파업도 하지 않는 로봇을 선호할 것이란 시장의 예측이 반영된 결과다. 산업계 관계자는 "지금 추세대로면 정규직 충원 없이 자동화로의 전환이 빨라질 것"이라며 "실제로 일부 제조업체는 신규 채용을 중단하고 자동화 설비 투자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불어 최근 산업계에서는 '피지컬 AI(Physical AI)' 개념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소프트웨어 영역을 넘어 로봇팔, 물류드론, 무인지게차 등 물리적 장비와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조 리스크와 인건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피지컬 AI가 결합된 로봇은 매력적인 대체 노동수단이다. 단순 반복 공정은 물론 위험 작업까지 대체할 수 있다.


증권가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AI로 인한 탈노동화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과거 최저임금법이 키오스크를 확산시켰듯 노란봉투법이 AI를 통한 탈노동 움직임을 가속화시키는 양상"이라며 "피지컬 AI 기술이 상용화 속도를 더해 향후 제조·물류·건설·유통 분야로까지 자동화 도입이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피지컬 AI가 일손을 찾기 힘든 지역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더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충남 공주에서 내시경 부품 업체를 운영 중인 A대표는 8일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수도권은 인력이 넘친다. 하지만 지방에서는 일자리는 넘치는 반면 인력이 없고 일하려는 젊은이도 찾기 힘들다"며 "젊은이들이 대기업만 선호하는 지금, 피지컬 AI 확산은 지역 중소기업에는 훨씬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노란봉투법 옹호론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배규식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노란봉투법 도입을 초래한 건 바로 기업이라 말했다. 기업이 파업을 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노조 간부와 노조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남발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사용자가 노조 간부들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액수의 손해배상으로 △가정 파괴와 파산 △신원보증인들에게 부담 확장 △노조활동 봉쇄 등 보복적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배 전 원장은 또 우리 중·대기업과 공공기관들이 기업 규모 간 임금격차가 큰 점을 이용해 하청화·용역화·외주화를 남용함으로써 이익은 전유(專有)하면서 비용은 책임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한다. 그 결과 원·하청 간 고용을 분절화·양극화시켜 매우 불공정한 노동시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정된 노란봉투법은 원·하청 간의 노동시장 불공정성과 손해배상의 남발을 막기 위한 국가의 법적 개입이며, 이를 통해 하청·용역 노동자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라는 설명이다.


배 전 원장은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노사 간의 법적 다툼, 시행착오, 노사 갈등, 원·하청 간의 갈등을 다양하게 야기할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노사에 제시해야 한다. 또 중·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소업종별로 원·하청별 노사협의회의 틀을 갖춰 시작하되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해 원하청 공동노사협의와 공동교섭의 연착륙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하고, 노란봉투법 입법상 공백을 메우고 노사관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수준의 사회적 대화나 협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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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모(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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