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보성(전 삼성라이온즈 선수· 전 LG트윈스 감독)
기성, 명인, 본인방을 동시에 보유하는 '대삼관'을 달성하고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던 조치훈 9단은 "나는 목숨 걸고 둔다"고 했다. 한국 말도 서툰 6살에 엄마 곁을 떠나 최연소 입단의 꿈을 이루기까지 한판 한판이 목숨과 같았을 것이다. 입단을 못하면 닛코의 폭포에서 자살하기로 결심까지 했다. 그 오기와 각오가 그를 불멸과 불굴의 전사로 만들었다
시즌 막바지에 이른 프로야구. 지금의 삼성라이온즈 선수들도 그렇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한 게임 한 게임 목숨을 걸고 경기를 치른다. 100게임이 지난 지금은 어느 팀이든 지쳐있고 부상선수도 많다. 이럴 때는 에이스와 후보가 따로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닥치는 대로 빈자리를 메워나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필자도 감독시절, 127게임 페넌트레이스를 치르면서 마지막 날 순위가 결정되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부상 선수들과 함께 만신창이가 되어서 준플레이 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코리안시리즈를 두 번이나 경험했다. 그 스트레스는 말할 수가 없다. 선수들은 어떻게 부상의 악몽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풀고 시리즈의 마무리를 맞이할까.
야구선수들의 스트레스는 그 정도가 심한 만큼 관리도 유별나다. 그 중에서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김일융 선수의 독서가 참 인상적이었다. 그의 삼성시절 이야기다. 그 당시에는 라커룸이 없었다. 그는 외야의 잔디 그늘에서 책을 읽었다. 어쩌다 읽는건가 했는데 내내 책을 펼쳤다. 나는 어떻게 글자가 눈에 들어오나 싶었다.
삼성의 최고 타자 장효조는 음악이었다. 집과 승용차에 최고의 오디오를 장만하고 팝과 클래식을 들었다. 노래실력은 별로였던 것 같다. 시즌 20승을 기록한 김시진 투수는 부인과 경남타운 아파트 뒤 범어산을 올랐다. 삼관왕 출신의 홈런 타자 이만수는 교회를 자주 찾는다. 기도의 힘으로 그 힘든 포수 역할과 4번 타자의 부담을 이겨냈다.
야구만큼 부상의 위험이 큰 경기도 없다. 축구는 손가락부상 정도로는 게임에 지장이 없다. 야구는 다르다. 야구는 온몸이 부상의 대상이다. 손톱만 아파도 시합에 나갈 수 없다. 일본 프로야구의 영웅 나가지마는 그 많은 연봉의 절반을 먹는 것을 비롯한 몸 관리에 쓴다. 이만수도 현역시절 호텔 조식을 매일 두 번씩 먹었다.
한편으론 휴식이 금이다. 롯데시절, 엄청난 돈을 들여 일본 가고시마로 전지훈련을 갔다. 비용이 아까워 잠시도 쉬지 않고 훈련을 했다. 그걸 보고 전설의 투수 출신 가네다 감독이 무섭게 화를 냈다. '선수는 기계가 아니다. 오버워크는 절대 금물'이란다. 1루 헤더 슬라이딩은 전력질주보다 느리다. 선수도 코치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할까? 힘이 부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팁 하나. 내 경험으로는 단체로 멍때리기를 하는 것이 효과가 좋았다.
10분의 멍때리기 명상은 모든 잡념을 없애고 함께할 수 있는 팀워크와과 죽은 세포도 살려내는 결심들을 불러온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만한 스트레스 해소법도 없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토끼같은 자식 보다 더 큰 동기가 어디 있으랴.
지난해 우리는 한해를 잘 보내고도 코리안시리즈 초반 구자욱의 부상으로 우승을 기아에게 헌납해야만 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부상을 막고 스트레스를 없애라. 그러면 올해 삼성라이온즈는 가을야구에서 엄청난 빛을 낼 것이 다. 과연 어디까지 갈까. 그것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믿는다. 영웅과도 같은 열성팬들이 가진 염원의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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