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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발레, 뇌가 춤추는 시간

2025-09-11 06:00
문현주 대구미술관 커뮤니케이션 팀장

문현주 대구미술관 커뮤니케이션 팀장

마흔 넘어 발레를 시작했다. 발레리나의 유려한 선과는 거리가 멀고, 거울 속 내 모습은 여전히 어설프다. 그럼에도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묘한 환기가 찾아온다. 머리가 맑아지고, 잊고 지냈던 기억이나 영감이 불현듯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스민다. 내게 발레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고 있다.


발레는 전신을 사용하는 운동이지만 그 방식이 독특하다. 손끝과 발끝까지 섬세하게 조율해야 하고, 음악의 흐름에 따라 기억해 둔 안무를 이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몸의 균형이 잡히고, 집중력과 기억력이 함께 훈련된다. 실제로 7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살펴보면, 5년간 발레를 꾸준히 해온 이들은 치매 위험이 낮아지고, 균형 감각과 자세 교정에 뚜렷한 개선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발레를 18개월 이상 배운 집단에서는 해마 용적이 늘고, 균형 감각이 향상되고, 뇌신경 성장인자인 BDNF 수치가 상승해 학습 능력과 기억력이 향상되었다는 결과도 있다.


저속노화란 단순히 수명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결을 지켜내는 태도다. 뇌과학에서 이를 인지예비능이라 부르는데, 평소 다양한 활동으로 뇌에 여분의 전략을 쌓아두면, 손상이나 노화가 찾아와도 더 잘 견딜 수 있다는 개념이다. 나에겐 발레 수업이 바로 그 예비능을 생활 속에서 길러내는 시간인 것이다.


얼마 전 영국 왕립발레단인 '로열발레'가 내한했다. 발레단의 명성과 역사를 집약한 공연보다 개인적으로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발레단의 특별한 수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영국 로열발레, LG아트센터, 서울식물원과 공동으로 주관한 '도시숲 예술치유'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수업 대상은 발레를 전공하는 어린 학생이 아니라, 놀랍게도 여러 사연을 가진 중장년층 15명이었다. 참여자들은 발레단의 안무가와 함께 식물원을 함께 걷고, 그 잔상을 동작으로 풀어냈는데, 자연과 예술을 결합한 이 수업은 중장년층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예술이 일상의 활력을 되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보여주는 무대 예술을 넘어 사회적 가치로 확장한 발레 수업은 ESG 활동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지역에서도 문화예술기관과 지역사회가 협력해 중장년층을 위한 예술 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한다면, 예술은 고령화 시대 공동체 회복력을 키우는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예술은 단순히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삶 속에서 뇌와 몸을 춤추게 하고, 늙어가는 시간을 다른 결로 직조하는 힘이 있다. 발레가 내게 그랬듯, 더 많은 이들이 예술 속에서 새로운 활력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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