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50915023025434

영남일보TV

[박재일 칼럼] ‘특검’인가 ‘턱검’인가

2025-09-15 07:05
박재일 논설실장

박재일 논설실장

방송 뉴스를 보다가 한참 웃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빌미였다. 여당의원들이 비아냥거렸는지 모르지만, 김천 출신인 그의 발성이 도마에 올랐다. 특별검사 '특검'을 '턱검'으로 발음했다나. 앵커가 직접 차이를 시현했다.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서울 친구들은 나만 보면 '음악'이나 '쌀'을 발음해보라고 시켰다. 그들 귀에는 '엄악' '살'로 들린 모양이다. 경상도 사투리가 재미있었는지 아니면 놀린건지 여전히 분간이 안 간다.


정치에서 언변(言辯)은 절대적이다. 어쩌면 정치인의 생명력을 좌우한다. 현대 대중정치시대는 특히 그렇다. 일찍이 존 F 케네디가 그랬고, 근년 들어 오바마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사투리, 특히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는 정치에서 장애가 될까? 최근 인사청문회가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는 경상도 말잔치가 열렸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강선우 의원은 대구 출신이지만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았다. 세련됐다 할까. 반면 그를 추궁한 경상도 출신 야당 여성 의원들은 솔직히 좀 투박했다. 덩달아 추궁하는 논리도 빈약하게 들렸다. 마치 '음악'을 '엄악'이라 하는 것처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단연 '말솜씨'가 있어 보인다. 상대를 놀리거나 아픈 곳을 찌르는데 일가견이 있다. "나는 사람과만 악수한다"는 그의 말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좌우파의 언어패턴은 좀 구분된다. 진보좌파는 현란하다. 보수우파는 상대적으로 우직하다. 좌파의 단어는 아름다고 한편 교묘하다. 예를 들면 정청래 대표의 "드디어 검찰청이 폐지됐다는 소식을 추석 귀향길에 선물로 들려주겠다"는 식의 은유적이면서도 공격적 논법은 우파에서 찾기 힘들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미국에 억류된 한국 근로자 사건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전세기가 우리 국민 여러분을 모시러 출발할 것이다". 주어가 정부가 아닌 전세기다. 현란한 드리블에 가까운 언어구사력이다.


경상도 사투리가 진중함과 권위를 필요로 할 때는 효과적이다는 느낌도 있다. '보통사람'을 외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독특한 경상도 언어는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다. 사투리 발성 교정이 거의 불가능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 유명한 '닭의 모가지(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메시지의 결기가 더 중요함을 일깨운다.


친구와 대화하다 조선시대 사화(士禍)가 주제가 됐다. 사화는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외웠다. 무오·갑자·기묘·을사 순이다. 사화가 한 번 날 때마다 상대파(派)는 거의 수백 명씩 죽었다. 사약은 기본이고, 찟어 죽이고 참수하기도 했다. 가장 심한 벌이 삶아 죽인 걸 가정한 뒤 죄인과 말을 못하게 하는 팽형(烹刑)이라고 친구는 거들었다. 말을 건넨 이도 죽는 벌이다. 우린 독설이라도 말로 전쟁하는 작금의 정치가 그래도 낫다고 의견일치를 봤다.


말은 중요하다. 말에 담긴 진정성과 그에 부합하는 실천은 더 중요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고 했다. 거룩한 단어의 나열이나 후일 이에 부합한 국가정책이 실현됐느냐고 하면 의문이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혼용무도(昏庸無道)'란 어려운 사자성어을 동원했다. 목청이 높기도 했다. 그런데 주변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속이 다 시원했다. 송언석이 잘 하던데...". 정치는 결국 호불호, 니편이냐 아니냐의 영역이기도 하다. '특검-턱검'이냐는 중요치 않다. 사투리를 쓰지 않던 대구출신 장관 후보자도 결국 낙마했다. 이래저래 정치는 복잡하다. 아무튼 '턱검' 화이팅이다.



'특검과 턱검' 발성하는 앵커


경상도 사투리 보수의 투박함


좌파의 아름다운 단어의 나열


말로 하는 전쟁, 차라리 다행


결국은 진정성과 실천이 결정



기자 이미지

박재일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