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너무 나간 대통령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어제 오전 브리핑 때 여권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와 관련, "특별한 입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시대적·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임명된 권한으로서는 그 요구의 개연성과 이유에 대해 돌이켜볼 필요가 있지 않나라는 점은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처럼 해석돼 논란이 됐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강 대변인은 자신의 브리핑을 대법원장 사퇴 요구로 해석하는 것은 오독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추미애 법사위원장에 이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선출직 권력과 임명직 권력을 구분하는 행태는 매우 우려스럽다.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와 대통령의 임명 절차를 거쳐 6년 임기를 보장받는다. 임기는 사법부 독립의 상징이자,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의 간섭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안전판이다. 그런데 대법원장 퇴진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대통령실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하다.
사법부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판하는 것은 선출된 권력이 국민의 이름으로 전횡을 저지르는 것을 막으라고 헌법이 부여한 권한이다. 지금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선출됐다는 이유로 전횡을 저지르는 것 같다. 대법원장 사퇴 주장의 근저에는 내란전담재판부에 대한 대법원의 반대가 있다. 그렇다고 대화로 풀지 않고 사법부 수장을 몰아내려는 시도는 전체주의적 행동방식이다. 지금 민주당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사법부를 길들이려는 시도가 아니라 헌법 정신을 존중하는 자세다. 그것이 자신들을 선택해준 국민에 대한 기본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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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정치는 책임이 아니라 계산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어제(15일) 지도부가 총사퇴한 후 첫 비상대책위원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조국 위원장은 성비위 사태와 관련해 "피해자 상처 치유와 신뢰 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면서 "비대위원과 상의해 피해자 보호 강화와 예방 시스템을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조국 위원장의 핵심 키워드는 '통렬한 반성'과 '정치는 책임'이라는 말이었다. 뒷편 벽에는 '진심으로 진심을 얻겠습니다'라는 문구까지 내걸었다.
그러나 "책임지고 피해자의 상처 치유와 온전한 보상, 재발 방지 제도 등을 개선할 것"이라는 말과 달리 조국 위원장은 "피해자를 악용하고 당을 공격하는 정략적 의도가 보인다"고 주장했다. 성비위 사태 논란의 책임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 돌렸다. "2차 가해는 공동체 회복을 방해하는 행위로 당 차원에서 단호히 조치하겠다"는 말도 당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가 강조한 반성과 책임의 대상이 피해자가 아니라 조국혁신당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피해자는 조국 위원장이 옥중에 있을 때부터 문제를 알렸고 출소 후에도 진정성 있는 대화를 기다렸다. 기자회견 이전까지 조국 위원장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피해자를 보듬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득실을 계산했다는 분석이다. 공론화된 이후에 "비당원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는 변명도 "계산하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말과 거리가 멀다. 책임보다 계산에 더 빠른 조국 위원장을 두고 최동석 인사처장이 '무능한 사람' '국가적 재앙을 만든 사람'이라며 정치판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했다. 조국 위원장도 곰곰히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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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100일…TK 미래, 또 길을 잃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재생에너지 확충 구상을 밝혔다. 에너지 정책 변화의 타당성이나 대통령 발언의 진위는 더 따져볼 일이지만, 당장 TK 100년 비전의 하나로 꿈꿔왔던 '원전 르네상스'가 물거품이 될 위기 앞에 놓였다. 새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정책 변개(變改)로 길 잃은 TK 메가 프로젝트가 한둘 아니다.
대구경북신공항 사업은 더 심각하다. 2030년 개항 목표는 언감생심이다.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도 "사업기간을 다시 검토할 예정"이라고 시인했다. 자금 조달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서다. 사업이 추진될수록 해마다 예산이 조금씩 늘어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내년 예산(318억원)이 올해(667억원)보다 더 쪼그라들었다. 대구시가 요청(2천700억원)한 것과는 천양지차다. 이대로면 공기 연장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 지속성을 걱정할 지경이다.
대구·경북 행정통합도 마찬가지다. 이를 야심차게 추진해온 홍준표 전 대구시장조차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말한다. 이재명 정부의 5극3특 정책 대응을 위해 대구와 경북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박한 때에 통합 논의가 정지상태다. 오히려 광주시와 전남도 등 후발주자들이 추월하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최근 행정협의체 구성을 합의했지만, 행정통합보다는 '협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대구 취수원 이전도 당초 추진한 안동댐 이전보다는 구미 해평취수장 이전으로 가닥을 잡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 간 견해차가 커 지지부진하다.
멈출 것인가 새 길을 낼 것인가, 싸울 것인가 변할 것인가. 이재명 정부 100일, 진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대구경북이 맞닥뜨린 질문 앞에 또 섰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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