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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길] 오래된 미래

2025-09-18 16:39
이광섭 새마을문고대구달서지부 회장

이광섭 새마을문고대구달서지부 회장

며칠 전,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예상치 못한 혼란을 겪었다. 풍요롭게 쌓인 물건 앞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이미 집에 있는 물건까지 담고 있었다. 돌아와 보니 비슷한 물건이 서너 개나 겹쳐 있었다. 넘치는 풍요 속에서 오히려 결핍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이 경험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가 전하는 문제의식과 이어졌다. 책은 풍요와 결핍이 교차하는 오늘의 현실을 비춰주었고, 라다크 사람들의 삶은 그 문제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저자는 히말라야 고지대 라다크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길을 묻는다. 라다크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부족해 보여도 공동체의 연대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더 풍요롭게 살아갔다. 반대로 우리는 끝없는 생산과 소비 속에서도 고립과 불안을 겪는다. 마트에서 느낀 혼란은 바로 그 모순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라다크의 모습은 내 삶을 돌아보게 했으며, 가족과 직장의 풍경으로 이어졌다.


바쁜 하루 속에서 가족과의 식사는 늘 서둘러 끝나고, 스마트폰 속 정보에 매달리느라 곁의 사람들과의 대화는 줄어들었다. 직장에서는 효율과 성과가 관계보다 우선한다. '오래된 미래'는 이런 현실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 물음은 개인의 성찰을 넘어 사회와 지역의 문제로 이어졌고, 결국 '발전'이라는 단어에 닿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기대한 미래를 보장하지 않았다. 저자는 라다크의 현실을 통해 서구식 발전 모델이 사람들의 삶을 오히려 파괴했다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지역사회에서 추진되는 여러 정책 사업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화려한 시설과 큰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역사와 삶의 맥락을 놓친다면 그것은 진정한 발전이라 할 수 없다.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공동체의 정체성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남겼다.


책은 '옛 것으로 돌아가자'는 단순한 회귀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의 지혜를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려낼지를 묻는다. 나 역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동네 가게에서 안부를 나누며 물건을 사는 일, 주말마다 가족과 산책하며 계절을 느끼는 순간을 떠올렸다. 화려하진 않지만 이런 시간이 삶을 단단히 지탱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마트에서 느낀 풍요 속의 결핍은 공동체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래된 미래'는 더 많은 물건과 속도가 아니라, 더 깊은 관계와 따뜻한 공동체가 우리의 미래를 지켜낸다고 말한다. 오래된 미래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지금 여기서 공동체의 힘을 되살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진정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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