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대구퀴어문화축제
행사날 반월당역 인근에선 축제 반대 피켓시위 벌어져
20일 오후 4시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일대에서 열린 제17회 대구퀴어문화축제 무대에서 축제 조직위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조윤화기자
20일 오후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왕복 6차선 도로 중 절반인 편도 3차로가 거대한 무지갯빛 물결로 채워졌다. '우리는 지(워지)지 않아'라는 슬로건을 내건 제17회 대구퀴어문화축제 현장이다. 축제장 입구부터 2·28기념중앙공원 인근까지 약 90여 개 부스가 줄지어 늘어섰다.
참가자들은 성소수자 권리 증진을 위한 굿즈를 나누며 축제를 즐겼다. 하지만 축제장 펜스 바로 너머 인도와 인근 사거리에선 확성기를 동반한 반대 집회의 외침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와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불안한 공존'이 이어졌다.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이날 낮 12시부터 중앙네거리에서 공평네거리 구간 일부 차로를 점유한 채 축제를 강행했다. 올해 축제는 시작 전부터 장소 문제를 두고 경찰과 법적 공방을 벌이는 등 진통을 겪었다. 당초 조직위는 대중교통전용지구 개최를 고집하며 경찰의 집회 제한 통고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결국 국채보상로로 밀려나듯 자리를 옮겼다.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린 20일 오후 2시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는 반월당역에서 퀴어축제 반대 집회를 열었다. 조윤화기자
현장에서 만난 참가자들은 장소 변경에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축제 자체의 의미에 집중했다. 친구와 함께 부스를 둘러보던 대학생 이가형(22·북구 산격동)씨는 "작년보다 장소가 협소해지고 경찰 통제선이 더 촘촘해진 느낌이라 위축된 기분도 든다"면서도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우리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이 자리가 소중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진교 조직위원장은 "국가 권력과 맞서고 시민들을 설득하며 어렵게 이 자리에 섰다"며 "계획했던 장소는 아니지만 참가자들이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린 20일 오후3시30분쯤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가 퀴어축제가 열리고 있는 국채보상로 일대에서 피켓시위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조윤화기자
갈등의 수위는 축제장 밖에서 더 높았다. 약 1km 떨어진 반월당역 인근에선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 측 5천여 명(주최측 추산)이 집결해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 반대' 등이 적힌 티셔츠를 맞춰 입고 축제의 불법성을 주장했다. 특히 반대 단체 관계자 70여 명은 축제 부스 바로 뒤편 인도인 교보문고와 KFC 인근까지 진출해 피켓 시위를 벌였다. 반대 측이 축제 전부터 퍼레이드 경로 곳곳에 집회 신고를 선점해둔 탓에, 퀴어 축제 참가자들과 반대 시위대가 불과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대치하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다행히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현장에 1천여 명의 경력과 순찰차·사이드카 44대를 투입해 인간 띠를 형성하며 양측의 접촉을 원천 차단했다. 교통경찰들은 차량 흐름을 통제하며 시민 불편 최소화에 주력했다. 축제장 인근을 지나던 시민 박태민(35·중구 인교동)씨는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양쪽의 주장이 너무 팽팽해 지나가기 무서울 때도 있다"며 "축제의 자유와 시민의 통행권 사이에서 적절한 합의점이 빨리 도출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오후 4시쯤 시작된 퍼레이드가 무사히 마무리되면서 제17회 축제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집회 장소를 둘러싼 공권력과의 갈등, 지역 사회의 찬반 대립이라는 숙제는 여전히 국채보상로 위에 남겨졌다.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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