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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로에서] U-18 야구월드컵 후기

2025-09-24 09:20

경산 진량의 우사서 훈련해


국대 에이스된 '초등오타니'


U-18 야구월드컵 판정보며


한국의 '야구 외교' 아쉬워


유망주의 땀 희생돼선 안돼


이효설<체육팀장>

이효설<체육팀장>

인터뷰를 할 때 장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장에서 할 것. 원칙까지는 아니지만 가급적 인터뷰할 사람의 공간에서 하려 한다. 대구시체육회 한 회의실에서 한국수영 '단거리 간판' 지유찬 선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사무공간의 제약때문이었을까. 형식적인 질문과 겉도는 답변에 그쳤다. 아쉬움이 컸다.


지난 8월말, 경산 진량의 한 공동 우사에서 '초등 오타니' 권윤서 투수를 만났다. 그는 U-12 세계유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 동메달결정전에서 완봉승을 앞세워 대만을 제압했다. 단연, 대표팀의 에이스였다. 6이닝 75구를 던져 5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 무4사구. 완벽한 피칭을 선보였다. 백종길 대구연식야구연맹 전무이사는 "부상만 안 당하면 세계 무대까지 갈 것"이라고 평했다.


12살의 권윤서는 푹푹 찌는 우사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송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루 4~5시간, 학원도, 게임도 모른채 야구공, 배트와 씨름한다고. AI심판이 투수의 공을 판정하는 이 시대에 살면서 우사에서 홀로 야구를 연습해 국대까지 간 초등생을 만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윤서가 아까웠고 또 안타까웠다. 윤서의 아버지는 "잘 먹여야 하는데"하며 말을 잇다 눈시울을 붉혔다. 자식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력해 대견하지만, 그보다 미안함이 더 커보였다. 윤서의 손바닥 곳곳에 박인 누런 굳은살을 보며, 꿈을 포기하지 않길 진심 바랐다.


2주쯤 지났을까. U-18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만과의 동메달결정전을 보며 윤서가 떠올랐다. 이 대회에 고교야구의 최정예 선수들이 출전해 전세계 18세 야구 유망주들과 기량을 겨룬다. 2-2로 맞서던 7회초, 한국이 결승점을 내줬다. 2사2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한국 투수가 안타를 맞았고, 중견수가 홈으로 송구한 공을 포수가 잡아 대기했다. 한국의 우승을 예감한 찰나, 포수가 홈으로 뛰어들던 대만 주자를 태그했다. 시간적으로는 여유 있는 아웃이었다.


하지만 일본인 주심이 판정을 미뤘다. 이후 대만 벤치가 비디오판독을 요청했고, 결과는 대만의 득점. 이건 아닌데 싶었다. 한국 포수가 주자의 진로를 가로막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였다. 석수철 한국 대표팀 감독이 항의했지만,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한국은 마지막 7회말 공격에서 삼자범퇴로 끝났다. 승부의 결정적 상황이었던 7회초는 주최측의 SNS 계정에 업로드되지 않았다.꿈을 쫓아 세계 무대까지 진출한 야구 청춘들에게 이 경기는 과연 공정한 경기로 기억될까.


납득할 수 없는 경기를 지켜보며 한국은 야구 외교, 영향력에서 패배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야구장 안에서만 사는 국내 야구인들이 잘못된 행정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 그래서 한국이 개최지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을 감수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이게 한국 야구의 현주소인 것 같아 서글펐다.


졸지에 역전패를 당한 한국 청소년팀은 경기후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했다.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어린 선수들의 모습이 오랫동안 중계화면에 잡혔다.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잘못이 없다.


한국야구가 세계 랭킹 4위를 유지했다는 보도가 엊그제 나왔다. 프로야구가 있는 나라들 중 최하위란 얘기다. 1위 일본, 2위 대만과의 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진정 한국야구가 우려해야 하는 것은 권윤서처럼 꿈을 위해 땀 흘리는 야구 꿈나무들이 이 순간에도 계속 자라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야구의 실패가 한국 야구선수의 실패로 이어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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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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