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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욕심을 부리다 보면

2025-10-15 06:00
김보라 작가

김보라 작가

소설을 쓸 때는 주인공의 이름이 중요하다. 독자들이 상상하는 외모, 성격, 직업과 잘 맞아야 하고 너무 예스럽지도 세련되지도 않아야 한다. 하지만 결국 이름도 유행이 돌고 돌아서 이 일을 한 지 10년쯤 지나니 고민에 맞닥뜨린다.


그래서 나는 그 방법의 하나로 친구들이 근무하는 직장의 웬만한 사원 목록을 가지고 있다. 50대의 인자한 이름이 필요하면 부장님을, 40대의 근엄한 이름이 필요하면 차장님을, 30대의 경쾌한 이름이 필요하면 대리님을, 20대의 싱그러운 이름이 필요하면 주임님의 이름을 찾는다. 그리고 이제는 인상적인 이름이 있으면 내게 먼저 전달해주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다.


소설을 쓸 때는 책의 제목도 중요하다. 소개팅에서 첫인상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독자들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것은 책의 제목이다. 궁금하면서도 계속해서 뇌리에 남는 제목이 필요하다. 이 부분만큼은 아직도 문외한이라서 출판사 피디님의 도움을 받곤 한다.


소설을 쓸 때는 표지 일러스트도 중요하다. 다만 내가 원하는 일러스트 디자이너님의 일정이 비어 있는 것이 첫 번째이기에 사실상 이 부분은 약간의 행운도 작용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취향과 독자의 취향이 가장 명백하게 다른 것이 표지이기에 조금은 나의 취향을 내려놓을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수많은 것들을 제치고 결국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모든 것은 독자들이 1화를 읽는 순간 사라진다. 약 4천200자의 짧은 1화를 읽는 것만으로 주인공의 이름을 고민하는 것도, 책의 제목을 정하는 것도, 표지 일러스트를 고르는 것도 한순간에 소용없는 일이 될 수 있다.


"너는 왜 모를 때 검색을 안 하고 책을 사?" 나로서는 의문조차 갖지 않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구의 질문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의문이 생기면 그 답을 책에서 찾았다. 그 의문은 여행을 떠나기 위한 사전답사일 때도, 특정 분야에 대한 호기심일 때도, 불안이나 사랑 같은 해결되지 않는 감정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 답은 여행책이, 인문학책이, 소설책이 되기도 했다.


나는 주인공의 이름도, 책의 제목도, 표지 일러스트도 하물며 내용까지도 독자들의 마음에 들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하지만 사실은 퇴근길 지하철에 앉은 누군가의 입꼬리 한 번을 씰룩이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소소한 욕심쟁이다. 이 정도의 욕심이라면 누군가에게 내 책 또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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