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화재 제5호 김소희 선생의 춘향가 이수자
영화 ‘서편제’ 출연…배우·방송인·교수 등 활약
“판소리, 애증의 관계…이젠 그림자 같은 존재”

오정해 국악인이 14일 오후 대구 동구 영남일보 대강당에서 열린 영남일보 CEO아카데미에서 '오정해의 소리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소리는 판소리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소리를 꺼내는 것이 바로 소리꾼의 역할이죠."
지난 14일 영남일보 지하 2층 대강당에서 열린 영남일보 CEO 아카데미에서 국악인 오정해가 '오정해의 소리이야기'를 주제로 경쾌하게 강의를 열었다. 그는 제주민요 '너영나영'을 시작으로 소리꾼으로서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유쾌한 입담과 즉석 무대를 곁들여 소개했다.
전남 목포에서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오정해는 어린 시절 사극을 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목포시립국악원에서 판소리를 처음 접했고, 중학교 1학년 때 '전주대사습놀이'에 나가 최연소로 장원을 수상했죠. 그곳에서 제 스승이신 대한민국 최고의 국창, 만정 김소희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인간문화재 제5호 김소희 선생의 춘향가 이수자로, 그때부터 본격적인 소리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그전까지는 취미였지만 선생님의 제자가 된 순간부터 전공자가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일흔이 넘으신 연세에 레슨비도 받지 않으시고, 직접 먹이고 재우며 저를 가르쳐주셨다. 조건은 하나, 그저 원하는 제자로 잘 커달라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오정해 국악인이 14일 오후 대구 동구 영남일보 대강당에서 열린 영남일보 CEO아카데미에서 '오정해의 소리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영화 '서편제'(1993) 출연 비하인드도 전했다. "어머니의 권유로 1992년 '미스 춘향 선발 대회'에 나갔는데, 우연히 임권택 감독님의 눈에 띄어 주연인 송화 역으로 캐스팅됐어요. 원래 꿈이었던 연기자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지만, 당시엔 '누가 판소리 영화를 보러 오겠나' 싶었죠.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제가 좋아하는 소리를 대중들도 좋아해주셨어요."
김소희 선생이 가장 좋아했던 '상주아리랑(메나리제)'을 열창하며 감동을 더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의 아픔을 담은 노랫말이 선생님께 와닿았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른 지금, 선생님께서 그 노래를 되뇌시던 모습이 떠올라 저 역시 가장 애정하는 노래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판소리와는 '애증의 관계'라고 표현했다. "판소리가 쉬웠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거예요. 선생님의 칭찬 덕분에 한 걸음 디뎠고, 그다음부터는 어렵기에 오히려 포기하지 못했죠. 그런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제는 늘 함께 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됐어요."
끝으로 후배 국악인들에 대한 따뜻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요즘 관객들은 '모든 걸 잘하는 소리꾼'을 원하기 때문에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는 후배들이 많다. 그들이 '소리를 버렸다'고 보기보다 우리 음악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고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그럼 앞으로도 더 많은 소리꾼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오정해는 중앙대 예술대학 한국음악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예술대학원 석사와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박사 과정을 거쳤다. 현재 동아방송예술대 연극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소리꾼·배우·방송인으로서 우리 소리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다.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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