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 영화평론가
'요도(淀)'는 일본 교토부(京都府) 남쪽에 위치한 요도강(淀川) 주변 지역을 말한다. 물살의 흐름이 느려지다, 즉 잔잔한 물의 흐름을 의미하는 '요도'는 1960~70년대 일본에서 항공기마다 강의 이름을 붙이던 전통에 따라 기체명이 되었다. 그런데 1970년 3월31일 오전 7시33분경, 하네다공항을 출발해 후쿠오카로 향하던 요도호에서 하이재킹이 발생한다. 납치범들은 일본의 급진 좌파 단체인 적군파 소속으로, 무장혁명을 표방하며 조종사들에게 비행기를 평양으로 돌릴 것을 종용한다. 남한은 이 틈을 타 요도호를 김포공항으로 유인해 인질들을 내리게 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결국 하루 하고도 반 나절 이상의 인질극 끝에 요도호는 4월1일 오후 2시15분경 평양 미림비행장에 착륙했고, 납치범들 중 대부분은 북한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요도호는 북한에 압류되어 다시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 언론은 종종 이 사건을 '요도의 고요가 무너진 사건'이라고 표현한다. 평온하고 잔잔한 물결이라는 이름의 요도호가 이념적 폭력의 희생양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변성현 감독의 '굿뉴스'는 바로 이 사건을 기반으로 한 블랙코미디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는 물론, 지금까지 OTT 플랫폼의 투자를 받은 한국 영화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각본을 비롯한 모든 영화적 요소에서 완성도가 뛰어나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데 '요도호'를 먼저 장황하게 끌어들인 것은 '굿뉴스'가 바로 요도호와 같은 아이러니를 중첩시키며 의미를 생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요도호가 이름값을 못했다면, 주인공은 호칭과 반대로 일당백을 해내는 사람이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이름도 없이 '아무개'(설경구)로 불리는 이 중년의 남자는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요도호 사건의 해결사 역할을 한다. 남한 입장에서의 해결이란 통신을 훔쳐 요도호를 평양으로 꾸민 김포공항에 착륙시키고, 승객들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정부 관료 및 장군들은 권위적이고 성과만 챙기려는 무능한 인물들로 묘사되는 한편, 아무개는 직책도 없이 외교와 안보의 중대한 위기를 척척 해결해나간다는 점이 곧 '굿뉴스'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아무개의 작전에는 엘리트 공군 중위 '서고명'(홍경)도 한 몫을 한다. 이름처럼 출세욕이 강한 그는 처음에 초급 간부일 뿐인 자신이 정부의 중요 임무를 수행한다는 데 잠시 도취되지만 갈수록 일이 잘못되면 모두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관료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진저리를 친다. 높은 분들이 대통령의 숙취를 걱정하는 척 아부를 떨 때도 정작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지 머리를 굴리는 건 아무개와 서고명 두 사람이다.
영화의 말미에 아무개는 거사를 함구하는 대가로 '최고명'이라는 이름이 적힌 신분증을 받는다. 자신의 이름이 드높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가 이런 이름을 택한 것은 이름 자체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베드뉴스'로 바꾸어도 무방할 '굿뉴스'라는 제목도, 아무개와 다름 없는 트루먼 세이디라는 이름도 같은 맥락에 있다. 변성현 감독은 군부 독재 시대의 야만적 행정에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며 국가를 존속시켜갔던 아무개들, 고명들의 이야기를 이 웃지 못할 더블 하이재킹 사건에 신랄하게 담아냈다. 독재는 끝났다. 그러나 21세기에도 분명 우리의 아무개들은 어디에선가 가쁜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