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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자신감을 위하여

2025-10-29 06:00
김보라 작가

김보라 작가

재즈 페스티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지하철역까지 우연히 걸음을 맞추어 걷게 된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 그는 자신은 미국에서 왔고 모 대학교에서 임시 교수로 일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차례는 나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대단하다고 나를 추켜세웠고 나는 으레 한국인의 겸손을 떨며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보통의 대화라면 여기서 멋쩍게 끝나는 것이 당연한데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한번 되물었다. "작가면 계약을 하잖아. 회사가 너를 골랐어? 아니면 네가 회사를 골랐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내가 회사를 골랐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그럼 대단한 거 맞네! 회사를 고를 수 있다니 너 완전 프로 작가잖아?"라고 말했다. 후덥지근한 여름 바람, 격양된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부드러운 재즈 선율이 나에게는 일시정지된 시간처럼 고스란히 남아있다.


책 한 권을 출간하기까지는 피디님과 교정 작가님, 일러스트 작가님, 출판사 직원분 등 아주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지만 완결을 내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라서 1화부터 80화까지 쓰는 동안에는 늘 나와의 싸움을 한다. 그리고 글이 막히는 순간, 글이 써지지 않는 순간마다 문득문득 그 대화가 떠올랐다. '그래, 나는 프로야! 프로지!' 그렇게 나를 다잡았다.


사실 내가 프로인지 아마추어인지는 상관없다. 모든 게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서 다 그만두고 싶을 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아마도 그날 이름 모를 사람과 무심코 나눈 대화가 '나는 아직 부족해. 한참 모자라' 하고 생각하던 내 깊은 불안함을 새로운 자신감으로 바꾸어준 셈이다.


그렇게 더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니 나는 나를 회복시킬 수 있는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시간제한 없는 길고 긴 산책하기, 쓸모는 없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소품 구매하기,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매운 떡볶이 먹기 정도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것을 혼자 해야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자, 부모님, 친구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나 오롯이 나를 가장 잘 아는 나를 위해 쏟는 시간을 가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과 마음이 회복된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겨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막힌 원고 앞에서 '그래, 나는 프로야! 프로지!'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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