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서 동해에서 남도의 끝 제주도에서, 그 어디서 떠나도 한 품에 넉넉히 안아줄 백두산~" 노래마을의 '백두산으로 찾아가자'는 소절 중 하나다. 지금껏 백두산을 여러 차례 올랐지만, 갈 때마다 설레는 건 '천지를 보겠구나'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못 본 사람이 천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 급변하는 날씨 탓에 천지를 제대로 보긴 어렵다.
중국에서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은 보통 북쪽, 서쪽, 남쪽 등 세 갈래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북쪽이다. 20년 전 연길에서 북쪽 코스로 백두산에 가면 차로 6시간 이상 걸렸는데, 도로가 확장돼 시간이 훨씬 단축됐다. 전에 없던 고속도로 휴게소도 군데군데 생겼고 도로변 주택도 초가나 붉은 벽돌 기와집에서 슬레이트로 바뀌었다. 특히 도로변 중국의 화장실은 불결하고 민망했는데, 이번 중국 여행에선 그런 곳이 없었다.
날씨가 궂으면 백두산관리국에서 산문 출입을 폐쇄하기도 하는데 천지를 볼 확률이 반반이란다. 지금까지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느긋하게 맘을 먹었는데, 결국 출입을 금지했다. 백두산은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가 관리하다가 2005년부터 지린성 정부가 직접 관리한 이후부터 환경 보전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정비됐다. 백두산 초입에 늘어서 있던 호텔 등 숙박업소가 철거되고, 버스도 여러 번 갈아타야 입구까지 올 수 있게 됐다. 천지에 발을 담그는 것도 관광도 금지했고 무분별하게 흩어져 있던 장뇌삼밭도 사라졌다. 하지만 백두산은 여전히 개발 중이었다. 중국의 경제 성장과 맞물려 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난 탓이다. 이날은 천지 구경은커녕 장백폭포까지도 못 올라간 채 토목공사 현장만 보고 왔다.
북한의 건설노동자들이 압록강 하류에서 지난해 대홍수로 유실된 제방을 쌓고 있다.
백두산 아래 첫 도시라는 송강하에서 고구려 첫 수도 지안(集安)시까지는 4차선 고속도로가 뚫렸다. 차로 5~6시간 걸렸는데, 지금은 4시간으로 줄었다. 지안은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산성하 고분군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즐비하다. 예전엔 광개토대왕비를 보존한답시고 통유리로 감싸 못 들어가게 했는데 문을 만들어 안에서도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끔 했다. 고구려 국내성이 있던 자리엔 아파트단지와 상가가 그대로 있다. 군데군데 성벽을 새로 만들었지만, 볼품이 없다. 환도산성 아래 고구려 고분군 역시 새로 쌓은 건데, 허물어지지만 않았다면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장관이었을 거다. 고분군엔 개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A라는 후손이 못 나서 조상의 선산과 비석을 B라는 중국에게 빼앗겼는데, B가 그 땅과 비석이 원래부터 자신의 것이라 하는 게 동북공정의 요체다. 이제는 중국의 세계문화유산이 돼버린 실체적 사실 앞에 역사의 진실은 고분처럼 묻혀 있어 서럽다.
백두산 북파 코스인 장백폭포 쪽에는 토목 공사가 한창이다.
지안 남쪽 맞은편 압록강 너머는 북한 자강도 만포시 일대다. 지안 압록강공원에서 바라본 북한 땅은 적막하다. 쌀이 부족한지, 쌀 증산을 외치는 글귀가 눈에 띈다. 잦은 비로 불어난 강물과 물안개로 강변 풍경이 몽환적이다. 지안에서 압록강 본류를 따라 더 내려가면 수풍댐이 나온다. 일행은 수풍댐 아래에서 1시간가량 유람선을 타고 평안북도 삭주군 일대를 바라보며 콴텐현 허커우촌까지 갔다. 국경수비대 초소가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데, 짐을 지고 가는 군인들 모습이 눈에 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소녀가 유람선을 향해 손을 흔든다. 청수노동자지구 공장 굴뚝에선 시커먼 연기가 나온다. 허커우촌에 선착장에 가까이 갈수록 북한 청수군과 허커우를 잇는 청성단교가 또렷이 보인다. 이 단교는 1939년에 건설한 길이 667m의 철교인데, 6.25 전쟁 때 중공군이 이 다리를 통해 북한에 병력과 물자를 보급하자 미군이 폭격해 끊어버렸다. 허커우 선착장엔 6.25 전쟁 때 중공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전사한 마오쩌뚱의 아들 마오안잉의 흉상이 있다. 마오안잉의 무덤은 아직 북한에 있다.
압록강 유람선에서 바라본 북한 땅. 평안북도 청수군 청수노동자지구의 한 공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압록강에서 그물을 당기는 북한 어민들.
북한 청수군과 중국 콴텐현 허커우를 잇는 청성단교.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폭파해 끊어진 다리다.
허커우에서 단둥까진 4차로다. 차창을 통해 압록강 넘어 북한 의주군과 신의주시를 바라볼 수 있다. 작년 7월 말 압록강 대홍수 때 강이 범람해 1천여명의 사상자에 1만여명의 1년 식량분이 사라지고, 농경지 3천여 ㏊, 살림집 4천여 세대가 유실되면서 압록강 내 위화도, 어적도, 구리도 등지의 농경지가 모두 물에 잠겼다. 이에 북한은 의주군, 신의주시 일대에 국가총동원령을 내려 군인건설자와 청년돌격대원 1천여명을 동원해 제방 둑을 기존보다 1.5배 이상 높이고 다리와 도로 등을 복구했다. 또한 대규모 남새 온실공장과 1만 5천여 신규 살림집 등을 지어 재건했다고 발표했다. 실제 전에 볼 수 없던 고층빌딩과 아파트 및 주택단지, 각종 상업시설이 들어서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단둥시 맞은편 신의주시도 단둥시의 발전에는 미치진 못하지만, 예전보다 높은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 조·중친선교(중·조우의교) 쪽을 바라보니 단둥에서 신의주로 들어가는 트럭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왕래하고 있다. 2015년 완공됐지만 개통을 하지 않고 있는 조·중 신압록강 대교도 10년 만에 개통 가능하다고 기대하고 있었다. 평양을 떠나 단둥으로 들어오는 화물열차도 포착됐다. 한동안 운행되지 않다가 얼마 전부터 재개됐다고 한다. 지난해 소원했던 북한과 중국 관계가 다시 회복되고 있는 것일까. 중국 여행업계의 움직임이 부산하단다. 중국 주요 도시에서는 장기간 중단된 북한 관광상품이 곧 출시된다고 한다. 실제 중국 지안 광개토대제 비석 주차장에 북한 여행상품을 소개하는 안내판도 보였다.
2015년 완공됐으나 아직 미개통한 조.중신압록강대교가 안개에 싸여 있다.
단둥 시내를 벗어나 호산장성으로 향했다. 이 성은 옛 고구려 시기 박작성이다. 박작(泊灼)은 '배를 대고 횃불을 밝힌다'는 뜻인데, 고구려 천리장성의 일부다. 중국 명나라 시기엔 호랑이를 닮은 산이라고 해서 중국이 호산이라 붙였다. 예전엔 박작성의 무너진 성벽과 성터만 있었는데, 중국이 동북공정의 하나로 역사공정을 하면서 박작성이 호산장성으로 기문 둔갑했다.
중국은 고구려 시기 박작성을 명나라 시기 호산성으로 바꿔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주장한다. 호산성 입구 모습.
안내문에 따르면 '명나라 시기 축조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돼 있다. 우리가 아는 만리장성의 동단은 산해관인데, 이 성까지 포함하면 만리가 넘는다. 신축된 호산장성은 베이징 교외에 있는 만리장성의 만리장성과 판박이 축소판이다. 성을 벽돌로 새로 쌓으면서 완전히 중국식으로 만들어버렸다. 다롄 인근 진저우(金州)시 비사성(중국명 대흑산산성)도 그렇게 해놓았던데 고구려나 발해성 거의 대부분을 당나라나 명나라 식으로 개축했다. 중국 내 진짜 고구려성을 보려면 백암성을 가보길 추천한다. 중국에선 연주성이라 부르는데, 고구려 시기 원형이 거의 대부분 남아 있다. 하여간 호산장성에 올라가면 압록강 하구 여러 섬을 잘 조망할 수 있다. 거의가 북한 구역이라서 망원경을 가지고 가면 사람들도 잘 볼 수 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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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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