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시 군위군 효령면 매곡1리에서 시골 어르신과 도시 어린이집 원장이 모여 '쌀농사 계약재배 협약식'을 진행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여섯째가 '매곡리 자연학교'를 운영하는 원필선 목사.
대구시 군위군 효령면 매곡1리 '자연학교' 대표이자 목사인 원필선씨.
가을 햇살 부드럽게 내리던 11월 초, 대구시 군위군 효령면 매곡1리 한 작은 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퍼졌다. 아이 하나 구경하기 힘든 산골마을에서 도시 아이들과 마을 어르신이 한데 어우러져 북적댄다. 아이들은 나무 둥지에 올라 서있기도 하고, 배추밭에서 벌레를 잡기도 하고, 어르신이 구운 군고구마를 받아먹기도 했다. 또 두려움 없이 흙을 만지고, 쪼그만 개미와 지렁이를 소중한 생명체로 여기며 오랫동안 지켜 보았다.
시골 어르신과 도시 어린이집 원장이 모여 '쌀농사 계약재배 협약식'이 열린 날의 풍경이다. '매곡리 자연학교'에서 싹튼 이 협약식은 올해로 10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매곡리 어르신이 직접 가꾼 논에서 수확한 쌀을 도시 아이들과 나누는, 세대와 공간을 잇는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온 자리다. 이 따뜻한 만남의 중심에는 자연학교 대표이자 목사인 원필선(50)씨가 있다.
자연학교의 시작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 서구 비산동에서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던 작은 교회가 '이제는 시골로 가야 한다'라는 뜻을 세우고 매곡리로 이전한 것이 계기였다. 그곳에서 선배 목사인 곽은득 목사가 자연학교를 열었고, 원필선 목사는 2014년 부임하여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매곡리 자연학교는 단순한 체험장이 아니다. 아이들은 봄에 씨앗을 심고, 여름에 잡초를 매고, 가을엔 수확하며 한 해의 순환을 몸으로 배운다. 체험으로 시작했지만 1년이 지나면 어느새 삶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원 목사는 "매곡리 자연학교는 생태적 삶을 배우는 공간이다. 사계절이 최고의 교과서이고, 마을이 곧 교실"이라고 소개했다.
매년 이곳에서 이뤄지는 '쌀농사 계약재배 협약식'은 도시와 농촌이 서로 배우고 나누는 교육공동체의 실천이다. 2013년 매곡리에서 생태 텃밭 체험을 하던 대구 어린이집 원장들이 "마을과 좀 더 연결되면 좋겠다"라며 마을 어르신의 쌀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현재는 대구 북구 중앙대로 움사랑 생태어린이집(원장 문수아)을 포함한 9개 어린이집이 매곡리 여섯 어르신(홍천근·홍복상·홍순문·홍우헌·김해용·김광자씨)과 협약을 맺고, 매월 약 두 가마니(20kg 8포대) 분량의 쌀을 정기적으로 받아 간다.
어르신들은 '우리 손주 먹일 쌀을 짓는 마음'으로 참여한다고 했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어르신이 하루에도 몇 번씩 논을 찾아 벼를 살펴 가며 지은 쌀이다. 올해는 쌀값이 올라 서로 가격을 논의하면서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금액을 책정하고 나면 "올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쌀이 너무 맛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밥을 많이 먹습니다"라는 인사가 오간다. 시장 거래와는 다른, 사람 냄새 나는 풍경이다.
교육공동체가 더 활발하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기를 원 목사는 소망한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믿음으로 교육기관·학부모·마을주민이 함께하는 교육공동체를 더 넓혀 나가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와 함께 궁극적으로는 주말살이, 한달살이로 시작해 언젠가 매곡리에 정착하는 가족이 생기길 바란다.
원 목사는 "매곡리 마을은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이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삶'을 배우는 그 자체가 교육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연학교는 결국 사람을 배우는 곳이다. 아이도, 어른도, 자연도 서로에게 선생님이 된다. 도시의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는 곳이 되고 싶다. 힘들고 지칠 때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찾는 공간이 되어 주고 싶다"고 했다.
조경희 시민기자 ilikela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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