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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칼럼] 인연... 故 안영주 교수

2025-11-16 16:48
박재일 논설실장

박재일 논설실장

몇 년 전 신문사 간부회의 시간인데 사장님이 지나가는 말로 운을 뗐다. "오늘 영남 식구들에게 장학금 수여 행사가 있었는데 그쪽 구미 학교 재단인가...박 기자 때문에 준다고 하던데". 의아했다. 나와 무슨 인연이? 그러고는 잊었다. 1년 뒤 똑같은 행사에서 재단 관계자를 만났다. '기환·영주 장학회' 이사장이었다. "20년 넘었지요. 영남대에서 열린 기증식 때 기사 썼잖아요. 돌아가신 안영주 교수님이 박 기자가 취재하러 온 것 보고 퍽 인상적이었다고 그랬어요. 후일 영남일보에도 작지만 장학금을 꼭 보냈으면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무척 놀랐다.


신문을 검색해 찾아보니, 1999년 11월4일자 기사다. '문화 유산 개인 소유일 수는 없다'는 제목에 안영주 전 영남대 교수가 대물림하며 수집한 서화, 골동품, 근현대 역사인물 작품 1천300여점을 영남대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기사였다. '오정·소정 컬렉션'이다. 수백억원대라는 언급과 함께 유홍준 당시 영남대 박물관장(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코멘트도 담겼다. "18세기 이래 우리나라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미술사와 민속학 복식사 연구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안영주(安英珠·1927~2016). 그는 만석꾼 집안 딸로 태어났다. 경산 고산 일대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닐 수 없을 정도였고, 굳이 따지면 경주 최부잣집 다음으로 부자였다고 한다. 경북여중·고를 다녔다. 해방 직전 일본 동경 목백여자대에 유학을 했고, 이후 서울 숙명여대를 졸업했다. 빛나는 청춘, 20살에 훤칠한 키의 미남을 만나 결혼했다. 이기환 서울대 법대 교수였다. 성주 이씨 명문가 오정(梧庭)·소정(小庭) 집안 장남이었다. 그러니까 오정은 안영주의 시조부, 소정은 시부이다. 장남을 낳고 행복하던 가정에 먹구름이 꼈다. 6.25 전쟁통에 남편이 납북됐고, 그길로 영영 소식이 끊겼다. 마음을 추스리고 교수직에 몰두하던 중 시련이 또 엄습했다. 서울 경기고에 진학해 총학생회장에 뽑힌, 아버지를 닮은 아들(이재호)이 학생활동중 목숨을 잃었다. 강의 도중 그 소식을 듣고 기절했다고 안 교수는 일기장에 썼다.


안영주 전 영남대 교수 추모 기록. 기환·영주 장학회 제공

안영주 전 영남대 교수 추모 기록. 기환·영주 장학회 제공

불교에 몸담은 것도 그즈음이다. 청도 운문사에 칩거하기도 했다. 영남대에 복귀했지만 강의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1973년 교편을 놓았다. 47살 때였다. 팔공산 중턱에 사과밭을 일구기 시작했고, 6만5천여평으로 불어난 그곳을 1997년 불교 종단에 기증한다. 부동산 업자들이 팔라고 조르던 중이었다. 지금의 도림사 터이다. 나눔은 가지를 뻗듯 이어졌다. 앞서 1970년 일본 동경문화대 연수 시절 벗나무가 이뻐서 현지 묘목시장을 뒤져 1천 그루를 가져와 영남대에 심었다. 지금은 벗꽃길, '러브로드'로 불린다. 두류공원 벗나무도 그가 기증한데서 출발했다. 1985년에는 구미 경구학원을 설립했다. 경구중·고 재단이다. 98년에는 남편 이름을 앞세운 기환·영주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주말 단풍이 들었다길래 팔공산으로 향했다. 도림사가 생각나 찾았다. 고(故) 안영주 교수가 영면한 곳이다. 그의 공덕비도 있다. 9주기 추모제가 얼마 전에 있었다 한다. 절 곳곳에 미술대회에 참가한 이들이 단풍을 화폭에 담고 있다. 단풍은 저절로 물드는 것일까. 그를 만났지만 기억이 없다. 그래도 옷깃 이상의 인연이 스쳐온다. 그는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영남대 의상학과에서 강의한 대구경북 최초의 여성 교수이기도 하다.


고(故) 안영주 교수가 기증한 터에 자리한 팔공산 도림사 전경

고(故) 안영주 교수가 기증한 터에 자리한 팔공산 도림사 전경



20여년전 취재했던 주인공


기억하고 베푸는 마음에 놀라


안영주 전 영남대 교수의 삶


'오정·소정' 에서 '러브로드'까지


단풍속에 전해지는 그와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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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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