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희 미용사가 중학생 때부터 단골인 황군의 머리를 만져 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30년째 같은 자리다."
정서희씨(60)는 미용 일을 시작한 지 41년이 됐고, 그중 30년을 앞산 큰골길에서 보냈다. 열아홉에 가위를 잡은 뒤 반평생을 이 일과 함께 살아왔다. 그 오랜 시간 정씨가 가장 가까이 마주한 건 동네 주민들의 하루였다. "손님은 매시간 달라요. 기분도 다르고, 사는 이야기와 고민도 다 달라요."
정씨는 손끝에서 달라지는 손님의 모습을 볼 때마다 미용사라는 직업의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게 문이 열리고 올해 스물두 살이 된 황모군이 들어왔다. 중학생 시절 이 동네로 이사온 뒤로 단골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지금은 부산에서 첫 직장을 다닌다. 본가에 올 때마다 꼭 들러 머리를 맡긴다. 정씨는 "어린 학생이 청년이 되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니, 아이를 같이 키운 기분"이라고 웃었다. 황군은 "긴 시간, 제 머리를 맡겨서 믿음이 간다. 오래 이 자리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씨의 미용실은 대부분 익숙한 손님들로 하루가 지나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이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몇 해 전, 한창 더운 날이었다. 한 청년이 '머리를 감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행색은 노숙자에 가까웠다. 그 말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지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가게에 손님이 없어 안으로 들였지만, 머리카락은 굳어 한두 번 감아서는 풀리지 않았다. 열 번 가까이 샴푸를 하고 나서야 머릿결이 드러났다. 청년은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쑥스러운 듯 바로 나갔지만, 정씨는 그 모습을 오래 기억했다. "그분에게도 미용실은 필요한 곳이었겠죠."
오랜 세월 한 동네에서 미용실을 하면 아이가 자라는 과정, 가족의 형편이 달라지는 일, 갑작스러운 어려움까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정씨는 네 명의 아이를 키우던 한 가족을 떠올렸다. 10년 가까이 이 동네에 살았지만, 형편이 나빠져 집을 팔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4명의 자녀 머리를 만져줄 때, 정씨는 "가위질을 할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았다"고 회상했다.
"우리네 삶이 늘 따뜻할 수만은 없잖아요. 비 오고 추운 날도 있죠. 그런 날에 미용실 의자에 앉아 누군가가 내 머리를 정성껏 만져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게 작은 위로라도 되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요."
글·사진=이명주 시민기자 imps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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