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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뉴스-우리이웃]앞산 큰골길에서 30년째 미용실 운영 중인 정서희 미용사

2025-11-18 14:54
정서희 미용사가 중학생 때부터 단골인 황군의 머리를 만져 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정서희 미용사가 중학생 때부터 단골인 황군의 머리를 만져 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30년째 같은 자리다."


정서희씨(60)는 미용 일을 시작한 지 41년이 됐고, 그중 30년을 앞산 큰골길에서 보냈다. 열아홉에 가위를 잡은 뒤 반평생을 이 일과 함께 살아왔다. 그 오랜 시간 정씨가 가장 가까이 마주한 건 동네 주민들의 하루였다. "손님은 매시간 달라요. 기분도 다르고, 사는 이야기와 고민도 다 달라요."


정씨는 손끝에서 달라지는 손님의 모습을 볼 때마다 미용사라는 직업의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게 문이 열리고 올해 스물두 살이 된 황모군이 들어왔다. 중학생 시절 이 동네로 이사온 뒤로 단골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지금은 부산에서 첫 직장을 다닌다. 본가에 올 때마다 꼭 들러 머리를 맡긴다. 정씨는 "어린 학생이 청년이 되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니, 아이를 같이 키운 기분"이라고 웃었다. 황군은 "긴 시간, 제 머리를 맡겨서 믿음이 간다. 오래 이 자리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씨의 미용실은 대부분 익숙한 손님들로 하루가 지나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이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몇 해 전, 한창 더운 날이었다. 한 청년이 '머리를 감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행색은 노숙자에 가까웠다. 그 말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지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가게에 손님이 없어 안으로 들였지만, 머리카락은 굳어 한두 번 감아서는 풀리지 않았다. 열 번 가까이 샴푸를 하고 나서야 머릿결이 드러났다. 청년은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쑥스러운 듯 바로 나갔지만, 정씨는 그 모습을 오래 기억했다. "그분에게도 미용실은 필요한 곳이었겠죠."


오랜 세월 한 동네에서 미용실을 하면 아이가 자라는 과정, 가족의 형편이 달라지는 일, 갑작스러운 어려움까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정씨는 네 명의 아이를 키우던 한 가족을 떠올렸다. 10년 가까이 이 동네에 살았지만, 형편이 나빠져 집을 팔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4명의 자녀 머리를 만져줄 때, 정씨는 "가위질을 할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았다"고 회상했다.


"우리네 삶이 늘 따뜻할 수만은 없잖아요. 비 오고 추운 날도 있죠. 그런 날에 미용실 의자에 앉아 누군가가 내 머리를 정성껏 만져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게 작은 위로라도 되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요."


글·사진=이명주 시민기자 imps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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