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살로메 소설집 '뜻밖의 카프카'는 인간의 관계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다정과, 그 다정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를 천천히 탐색한다. <게티이미지뱅크>
200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 김살로메가 신작 소설집을 펴냈다. 전작 소설 '라요하네의 우산' 이후 9년 만에 펴낸 '뜻밖의 카프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결'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한층 단단해진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관계망에 대한 감각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대개 착실한 가운데 조금씩 추하고 가끔은 이기적이었다. 작은 불티 한 점으로 생겨난 미묘한 기류만으로도 파국을 맞을 수 있는 게 사람의 일이었다.' ('헬리아데스 콤플렉스' 중에서)
책은 △헬리아데스 콤플렉스 △내 모자를 두고 왔다 △뜻밖의 카프카 △안개 기둥 △무거운 사과 등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복잡하게 얽힌 인간의 관계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다정과, 그 다정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를 천천히 탐색한다. 각 편의 인물들은 관계의 균열과 회복을 오가며 타인에게 닿으려는 무의식적 몸짓을 보여준다. 이들은 상처를 지닌 채로 누군가를 보듬고, 때로는 오해와 단절을 겪으며, 다시 서로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작가는 이를 거창한 구원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의 텀블러를 대신 찾아주는 손길, 잃어버린 모자를 함께 걱정하는 시선 같은 세밀한 장면들을 통해 인간다움의 온도를 복원한다.
뜻밖의 카프카/김살로메 지음/아시아/344쪽/1만7천500원
'원룸에 도착해서 로사가 한 일은 미희의 팬티를 치우는 일이었다. 정작 그녀가 치우고 싶었던 것은 군소의 잔소리였다. 욕실에 갇혔어. 숨차서 죽을 것만 같아. 빨리 와 줘. 스마트폰 너머 미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뜻밖의 카프카' 중에서)
독창적인 발상이 담긴 표제작 '뜻밖의 카프카'엔 고독과 소외에 힘겨워하는 마흔을 앞둔 여성 로사가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 로사의 고독을 낳는 존재들은 다름 아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미희는 지금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로사에게 가장 먼저 부탁한다. 그러나 미희야말로 로사에게 치명적인 독과도 같은 존재였음을 알게 된다. 로사는 미희와 연관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진실과 마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사가 택한 건 관계에 구걸하지 않고 혼자가 되는 것이다. 이 결심은 '뜻밖의 카프카'라는 제목과 연결된다. 프란츠 카프카가 한평생 이방인으로 살고, 그가 작품에서 그려낸 인물들 역시 일상에서 소외되다 고독한 혼자로 남은 것처럼, 로사 역시 자신을 소외시키는 관계망에서 빠져나와 오롯한 주체로 서려 한다.
이번 소설집에서 김살로메 작가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내 안을 변주하는 동안, 그 어떤 메시지도 의도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의 질문만 남았다.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가"라고 고백한다. 어떤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 삶을 되묻도록 만드는 작품이라는 것. 문학평론가 이경재는 "공감과 연대의 생명길을 아로새긴 소설집"이라 평하며, 김살로메의 작품 세계가 "단독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그에 바탕한 삶의 이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문학적 성과"라고 말했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