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 소설가
1694년 11월21일 '캉디드'의 작가 볼테르가 태어났다. 풍자소설 또는 철학소설로 분류되는 '캉디드'는 1759년에 발표됐다. 볼테르의 나이 65세이던 1759년은 프랑스혁명 30년 전이다. 이는 볼테르가 계몽사상가라는 사실을 유추하게 해준다.
혁명 발발 직전 프랑스 사회는 모순의 혼돈에 빠져 있었다. 경제와 시민계급 성장을 구가하면서도 앙시앵레짐(낡은 체제)에 갇혀 허둥댔다. 귀족과 봉건의 틀은 여전했고 절대군주의 전제정치도 계속되었다. 사회 모든 분야의 핵심 계층으로 성장한 시민계급이 전근대적 요소와 전제정치 타파를 도모한 것은 당연했다.
당대 시민들의 머리와 심장을 휘어잡고 있던 사조가 계몽주의였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18세기에 발흥한 계몽주의는 자연과학의 발달,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로크의 정치사상에 힘입은 바 컸다. 즉 계몽주의는 르네상스 이래의 근대사상이 낳은 철학적 성과였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무지와 미신 타파, 정치와 사회의 합리적 개혁이 인류의 진보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다. 인간 이성의 힘을 신뢰한 그들은 절대왕정과 구제도를 비판했고, 자연권 사상과 사회계약론에 의지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 했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볼테르의 삶이 고난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23세이던 1717년 루이 14세 사후 섭정으로 있던 최고 권력자를 비방하다가 바스티유 감옥에 갇혔고, 32세이던 1726년에는 평민 출신 주제에 귀족을 얕잡아본다는 이유로 재차 바스티유에 수감되었다. 이때 영국 망명을 조건으로 볼테르는 간신히 석방된다.
40세이던 1734년 볼테르는 영국 체류 경험과 깨달음을 '철학 서간'이라는 책으로 발표한다. 그러나 반체제 사상이 농후한 이 저서는 이내 금서로 지정되었고, 볼테르에게 체포 명령이 떨어진다. 볼테르는 시골로 달아나 10년 동안 숨어 지낸다.
만년의 볼테르는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선 가까운 양쪽에 각각 집을 마련해서 살았다. 그는 두 나라 정권 중 어느 한 쪽의 탄압이 예견되면 언제라도 신속히 피신할 준비를 갖추었던 것이다. 볼테르는 무수한 명언을 남겼지만 그 때문에 생겨난 말도 있다. "철학자는 뒤쫓아 오는 개들을 피하기 위해 땅굴을 두셋은 파놓아야 한다."
볼테르 본인이나 다름없는 캉디드의 사상 역시 비관주의다.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를 캉디드는 "나쁠 때에도 그것을 최선이라며 우기는 광기"라고 힐난한다. 그래도 소설 '캉디드'의 결말에 나오는 캉디드의 마지막 발언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합니다." 사람의 일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