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나이 60에 비박을 하다니. 비박(bivouac, biwak)은 텐트없이 혹은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야외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야영방식을 말한다. 평범한 삶 속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스카우트 훈련 덕분이다. 지난 10월31일부터 11월9일까지 2주간 금토일 2박3일을 한국스카우트연맹이 운영하는 서삼릉청소년야영장에서 실시된 지도자훈련 상급과정에 참여하였는데, 2주차 첫날에 비박 프로그램이 있었다.
늦가을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그것도 환갑이 되어 처음 비박을 한다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주어진 장비라고는 텐트 위에 치는 타프와 바닥에 까는 비닐, 그리고 침낭이 전부였다. "입 돌아간다, 환갑에 인생 마감하려고 그러냐"는 등 온갖 걱정을 뒤로 한 채 비박에 도전하였다.
침낭 위에 쏟아지는 차가운 물줄기에 얼굴이 젖어 잠에서 깼다. 60년을 살았지만 야외에서의 결로 현상이 이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 훈련 과정 내내 텐트를 치고 야영하면서 불편했는데, 비박과 비교하니 텐트도 안락하기가 호텔급이었다. 현재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 채 우리는 외모, 재산, 학력 등 많은 것들을 남들과 비교하며 살고 있다.
목표를 높게 설정하는 것과 비교는 다르다. 꿈을 정하고 실행이 뒷받침되는 목표는 결과와 관계없이 의미있고 아름답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없이 머리로만 하는 비교의 길은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교만과 비참' 두 가지뿐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다투고 있는 즉시항고 포기와 항소 포기 중 누가 더 잘못했느냐와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최악의 비교이다.
비박지에서 밤을 보내고 떠오르는 일출을 보았다. 편안한 집의 창문을 통해서는 느끼기 힘든 감동의 순간이었다. "스카우트가 머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비박지를 정리하는데 그야말로 한 손으로 들 정도의 짐이 전부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것들을 소유하며 살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집에 돌아가면 불필요한 짐들을 정리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그 부피와 무게만큼 마음을 채우기로 다짐했다.
60 평생 살아오면서 결코 힘든 순간이 없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성공이라 말해주는 삶을 살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책도 맡아보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중 속의 고독처럼 내 마음은 늘 외로웠다. 화려한 조명과 박수가 끝난 무대 위에 홀로 남아 있는 배우 같았다.
높은 산을 오르면 정상 정복이라는 성취감도 있지만, 이는 잠시뿐 반드시 올라온 거리만큼 그리고 더 조심해서 내려가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환갑이 된다는 것은 인생의 정점에 올랐으니 이제 조심스레 내려가며 인생을 정리하라는 것이다. 살면서 은혜를 입은 소중한 인연들에게 하나씩 보답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라는 소명이 주어진 것이다.
필자는 대구 초·중등학교 시절 보이스카우트를 한 인연으로 현재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를 맡고 있다. 스카우트에서 배운 리더십과 교우관계, 도전과 협동 정신은 평생 함께 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큰 힘이 되었다. 한국스카우트연맹은 콘크리트로 만든 집과 학교, 학원을 오가며, 감성마저 콘크리트처럼 매말라가는 청소년들을 건전하게 육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2026년 여름 강원도 고성에서 한국국제잼버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은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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