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이벤트 놓치지 않으려 잠 뒤바뀐 초등학생들
해외 이용자 맞춘 구조에 국내 아이들 새벽 접속
로블록스 '브레인롯 훔치기' 게임 화면 캡처.
주부 김모(46)씨는 요즘 주말 새벽마다 낯선 풍경을 본다. 평소 아침잠이 많아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던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로블록스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새벽 4시에 맞춰 스스로 눈을 뜨는 것. 게임을 한 시간가량 즐긴 뒤 다시 잠들고, 오전이 훌쩍 지난 뒤에서야 느릿하게 일어난다. 김씨는 "일요일마다 게임하겠다고 새벽같이 일어나니 미칠 노릇"이라며 "말리면 친구들도 그 시간에 들어와 아이템 받아간다며 졸라대 결국 주말에만 허락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오 무렵에야 일어난 아이가 밤에도 좀처럼 잠들지 못해 일요일 늦게까지 깨어 있고, 월요일 아침에는 더 깨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는 "월요일마다 깨우는 게 전쟁"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비슷한 상황을 담은 숏폼 영상도 화제가 됐다. 새벽 5시, 초등학생 형제가 로블록스 이벤트를 마친 뒤 밝은 표정으로 아침밥을 먹는 장면이다. 벽시계를 클로즈업해 '새벽 5시'를 강조한 영상은 수천 개의 공감을 받았다. 댓글에도 "우리 집도 똑같다"는 부모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 '로블록스'의 새벽 이벤트가 학부모들의 고민으로 번지고 있다. 일요일 오전 4~5시와 수요일 오전 6~7시에 열리는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아이들이 수면 패턴을 바꾸면서 가정마다 갈등이 이어지는 것.
24일 로블록스와 관련 커뮤니티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특정 시간대에 접속한 이용자에게만 스킨이나 무기 등 희귀 아이템을 제공하는 이벤트가 매주 열리고 있다. 해당 시간에 참여하지 못하면 아이템을 얻을 수 없고, 뒤늦게 구매하려면 실제 돈을 지불해야 해 아이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부모들은 "미국 회사라서 새벽에 이벤트를 하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실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로블록스는 단일 게임이 아니라 수많은 이용자가 만든 개별 게임의 집합 플랫폼이며, 이벤트 시간도 각각의 크리에이터가 정한다. 미국·유럽 이용자가 많은 게임일수록 그들의 활동 시간대를 기준으로 이벤트가 잡혀 국내 이용자들이 한국시간 새벽에 접속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복되는 새벽 이벤트에 맘카페에는 "새벽 4시에 깨워 달라고 한다, "3시부터 대기한다", "안 하면 친구들 대화에 못 낀다"는 글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주말마다 수면 리듬이 무너져 월요일 등교까지 영향을 준다는 하소연도 적지 않다.
'브레인롯 훔치기'처럼 이용자에게 '훔치기' 행동을 전제로 아이템을 얻도록 하는 게임 구조도 부모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희귀 아이템이 새벽 시간대에만 풀리다 보니, 아이들이 '빼앗기'를 자연스러운 게임 방식으로 익혀 가는 것을 우려하는 부도들도 많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특성상 이벤트 시간을 직접 규제하기는 어렵지만 "각국 이용자가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크리에이터들에게 시간 조정을 권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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