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송하 박물관 휴르 관장
밤이 깊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조용히 빛을 품은 채 세상을 지켜보는 부엉이의 고요한 시선. 그 눈빛 속에서 나는 박물관 휴르의 마음을 보았다. 조용하지만 절대 흔들리지 않는 시선, 세상의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는 관찰력. 그런 마음이 박물관 휴르를 움직이는 힘이다. 그래서 박물관 이름도 직접 지었다. '휴르'.
부엉이를 뜻하는 옛말 '휴르새'에서 온 이름이다. 세상이 흘려보낸 것들을 끝까지 지켜보고, 잊힌 이야기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 그것이 바로 박물관 휴르가 존재하는 이유다.
박물관을 지켜보다 보면, 전시 너머의 일이 자연스레 마음을 채운다. 유물을 보존하는 손길만큼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이어갈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기억은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물을 지키는 일만큼이나,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는 일에 조용하지만,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그 책임감은 때로 무겁게 마음을 누르지만, 동시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작은 손길 하나가 모여 큰 빛을 만드는 것처럼, 오늘의 작은 관심과 가르침이 언젠가 문화의 큰 울림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지방 사립박물관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전문 인력의 부족이다. 문화는 결국 사람을 통해 이어지기에, 이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박물관 휴르는 단순히 유물을 보존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공간을 넘어, 학예사를 양성하는 학예 경력 인정 대상 기관이기도 하다. 나는 그 곁을 지키며 천천히 길을 안내하고, 미래를 지킬 인재들을 키우는 일을 함께한다. 더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싶지만, 열악한 재정 속에서 이 과정을 이어가는 일은 절대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역 문화의 내일은 결국 한 사람의 성장에서 시작되며, 그들이야말로 언젠가 문화생태계를 조용히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전시와 기록 보존만으로는 박물관의 사명이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한 역할은 미래의 문화를 지킬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다. 그 마음을 사랑하고 아끼며 지키는 사람을 통해서만 문화는 지속된다. 그리고 그 마음은 결국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오늘도 나는 부엉이의 눈처럼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다음 세대를 바라본다. 이 작은 시선 하나가 모여, 언젠가 밤하늘을 밝히는 별빛처럼 우리 문화의 미래를 환히 비추리라 믿는다. 오늘 우리가 소중히 지키고 기억하는 순간 속에서, 내일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이 자란다. 박물관의 미래, 그리고 문화의 미래는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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