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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易地思之] SUV, 널 사랑해도 괜찮을까?

2025-11-25 06:00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지난 11월5일 세계적 의학학술지인 '영국의학저널(BMJ)'은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판매를 억제해 사람 건강과 환경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지역적·국가적·국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게재했다. 물론 판매 억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UV는 현재 전 세계 신차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의 SUV 사랑이 워낙 뜨겁기 때문이다. SUV를 사실상 공해(公害)로 간주하는 'SUV 공해론'은 미국에서 2000년대 초부터 제기되었지만, 그간 SUV가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여왔다는 건 그 사랑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아파트 거주자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주차장의 풍경이 많이 변했다는 걸 절감하실 게다. 일반 승용차보다 높이가 높고 폭이 넓으며 무게가 무거운 SUV가 늘어나면서 달라진 풍경이다. SUV의 본고장이라 할 미국에서 들어온 어느 SUV를 소개한 경향신문 기사(2025년 4월28일자)는 "전면부 그릴 상단이 웬만한 성인 남성의 어깨까지 치고 올라온다 싶을 정도로 육중함을 과시한다"며 '다다익선'을 빗대 '거거익선'이 요즘 SUV 추세라고 했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신차 보닛의 평균 높이는 2010년 77㎝에서 2024년 84㎝로 증가했으며, 차량 폭 역시 매년 0.5㎝ 넓어지는 추세라나.


그런데 그런 추세가 왜 문제란 말인가? BMJ는 "차 크기가 커지면 보행자나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줄인다"며 "이동 공간에 제약을 주기에 상당한 공중보건 상의 이점도 빼앗아 간다"고 밝혔다. SUV에 치인 성인 보행자나 자전거 운전자의 사망 위험은 일반 승용차에 비해 약 44% 높으며, 어린이의 경우 사망 위험은 약 82%나 더 높다고 한다. BMJ는 "SUV의 높고 각진 보닛은 더 심각한 부상을 유발하고 충돌 사고의 치명률을 높인다"며 "또 대형 SUV 운전자의 시야가 좁아져 어린이의 위험이 더욱 커진다"고 지적했다. 랜드로버 디펜더 운전자는 바로 앞에 서 있는 네살짜리를 볼 수 없다고 한다.(매일경제 2025년 11월 6일자)


20여년 전 미국에서 'SUV 공해론'이 대두된 이유도 비슷했다. SUV는 일반 승용차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고 차폭이 넓어 좁은 길에서 다른 차에게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SUV의 범퍼는 일반 승용차의 범퍼보다 훨씬 높아 충돌하면 승용차 운전자에게 치명적이다. SUV 애호가들은 '안전'을 구입의 가장 큰 이유로 들지만, 비판자들은 그건 남이야 어찌되건 말건 자신과 자기 가족만 안전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안전운전에 신경쓰기보다는 충돌하더라도 안 다치거나 덜 다치자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사 결과 SUV 운전자가 일반 승용차 운전자에 비해 안전벨트도 잘 안 매고 음주운전도 많이 하고 운전 습관도 공격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실은 SUV를 타고 높은 시야를 확보해 일반 승용차들을 내려다보는 '권력의지'를 '안전감'으로 착각한 결과일 뿐이며, SUV 애호가일수록 이기심이 강하고 SUV 중에서도 큰 차량을 선호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는 비판까지 나왔다(미국에선 이런 비판도 있었다는 것일 뿐이니, 행여 분노하는 SUV 애호가가 없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지리학자 제이 애플턴은 인간에겐 '높은 전망'과 '높은 은신처'를 선호하는 본능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대해 시야가 트인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하며, 안전하고 보호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SUV의 높은 차체와 넓은 구조는 인간의 이 두가지 본능적 욕구를 채워주니, 어찌 SUV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심리적 측면에서 SUV의 폭발적 인기는 자동차 회사들이 엄청난 광고 물량 공세를 통해 소비자들의 심리를 조종한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일반 승용차 판매에선 이익이 박한 반면 SUV 판매에선 큰 이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광고 물량 공세가 가능했다). SUV는 특히 지적인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이를 일컫는 '여피족'의 세계관에 가장 잘 부합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에 얽매인 몸이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갈증을 느낀 저항자·반란자 이미지의 연출을 위해 SUV가 제격이었다는 것이다.


SUV 애호가는 오프로드 능력을 중히 여기지만, 실제로 오프로드를 달릴 일은 거의 없다. 중요한 건 막연하게나마 '자유에 대한 열망'과 '내 인생은 모험'이라고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만족감이다. 미국에서 200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자동차 브랜드는 대부분 그런 심리적 욕망을 겨냥한 것이었다. 탐험, 탐험자, 탈출, 나침반, 자유, 산악 유랑자, 항해자, 등반가, 개척자, 고지에 사는 사람, 하늘, 오지, 능선, 모험, 협곡, 산맥, 야생마, 방랑자, 카우보이 등등. 이런 이름에 걸맞게 자동차 광고는 늘 황량한 황야를 배경으로 해서 프런티어 개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광고에 다른 차량이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나 홀로 자연과 대결하는 듯한 비장하고 숭고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언론인 폴 로버츠는 '근시사회: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인류의 미래'(2016)에서 "SUV의 더 넓고 육중한 본체는 도로에서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여 마치 '군림'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며 "파충류 분위기를 풍기는 SUV는 개인의 힘에 대한 갈망을 사회조직이 훼손될 정도로 이용하는 현실의 극단적 예다"고 말한다.


어찌 SUV만 그렇겠는가. 과잉 사랑으로 미쳐 돌아가는 아파트를 놔두고 "SUV, 널 사랑해도 괜찮을까?"라고 묻는 건 위선일지도 모르겠다. 실용적 가치를 뛰어넘어 안전과 힘에 대한 집착이라는 점에서 SUV와 아파트는 같다. 엘리트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한국에서 확실하게 통용되는 한가지 조건은 아파트 재테크에 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와 재산공개 덕분에 알게 된 엘리트 집단의 놀라운 아파트 재테크 실력은 감탄을 넘어 혀를 끌끌 차게 만든다. 고급 아파트와 큰 SUV를 사랑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은 산에 올라 '높은 전망'이라도 즐기는 수밖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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