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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뉴스]장애 딛고 일어선 장태호 시계수리 명인 “인생을 수리해 주며 살고 싶어요”

2025-11-25 16:38
장태호 시계수리 명인은 인터뷰에서 후배들이 잘못된 길로 갈땐 인생을 수리해 주며 살아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장태호 시계수리 명인은 인터뷰에서 "후배들이 잘못된 길로 갈땐 인생을 수리해 주며 살아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대구 송라시장 근처에 위치한 '장태호 시계 수리점'을 찾았다. 반갑게 맞이해 주는 장태호 대표의 얼굴에는 구김살 없이 편안한 인상이었으며, 양쪽 목발을 짚고 일어서는데도 오랜 세월 몸에 밴 익숙함이 느껴졌다.


장 대표는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지난달 25일 자서전 '이젠 울어도 괜찮아'을 펴냈다. 과거의 아픔과 설움, 온갖 어려움을 딛고 홀로서기를 한 그는 인터뷰하는 내내 당당함과 진솔함을 보였다.


장 대표는 '남자는 태어나서 왜 세 번만 울어야 하나?'란 말에 의문을 갖게 했다고 했다. 그는 두 살 때까지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다가 세 살 때 갑자기 걷지 못하게 되었다. 그 시대엔 예방접종도 어려워서 제때 접종하지 못해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이 있다. 장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장 대표는 포항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세 살 때 엄마의 품을 떠나버린 아이가 되었다. 지나가던 외국 신부에게 구조되어, 보육원과 고아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성보재활원에 있을 때 그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시계수리반에서 밤늦도록 매진했다. 숱한 좌절과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것은 '장애를 입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용기를 잃은 것은 더 큰 것이며, 희망을 잃은 것은 다 잃은 것이다'라는 교실 한쪽 벽면에 붙여진 글귀를 새기면서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중등과정을 마치고, 사회에 나간 그는 남다른 시계수리 기술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했다. 끈질긴 집념 하나로 이룬 기술력은 가히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다. 각종 상을 휩쓸면서 마침내 시계 명인의 반열에 올라섰다. 1985년 국제 기능올림픽대회 시계수리 부문에서 정상인과 당당하게 겨루어 장애인이라는 높은 벽을 뛰어넘어 금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계를 만진 지 8년 만에 이루어 낸 쾌거였다.


장 대표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성공 후에도 그 마음은 한결같았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봉사하는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그는 성보학교 동창회 회장으로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1995년 가게는 호황을 누렸다. 생활이 안정되자 시계수리 기술을 배울 때부터 품어온 후진을 양성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가게가 좁아서 가게 뒤편에 터를 얻어 1년 과정의 '21세기 시계 연구원'을 2년 정도 운영하였다. 지금까지 그에게 배운 제자는 163명이다. 그는 "후배들이 잘못된 길로 갈땐 인생을 수리해 주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정말 시계 바보다"라고 했다.


시계의 집에서 시계바늘처럼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장 대표는 앞으로 개인의 성장을 넘어 더 많은 사람과 희망을 나누면서 과거의 일들은 추억으로 남기고, 성보재활원의 변함없는 후원자이자 삶의 길을 밝혀주는 영원한 등불이 되겠다고 했다.


글·사진=문순덕 시민기자 msd56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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