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사연을 그대로 옮긴 합창곡…“가사가 들리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정치적 프레임 가장 힘들어”…기억을 지키려는 지휘자의 고백
“노래로 남긴 22년의 기록…수익금은 모두 유족에게 전달”
김산봉 2·18합창단 예술감독이 연주자들과 함께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2·18합창단 제공>
김산봉 2·18합창단 예술감독
대구지하철참사 22주기를 맞아 2·18합창단이 오는 12월 5일 저녁 7시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제3회 정기연주회 '우리들의 이야기'를 연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잊힌 기억을 다시 불러내고, 유족의 삶을 시민 속으로 되돌려놓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올해 공연 주제에 대해 김산봉 예술감독(지휘자)은 "첫해엔 사고 발생 시간대별 칸타타(서사적 합창곡)로 참사를 재조명했고, 지난해엔 '안전한 대한민국'을 주제로 삼았다"며 "올해는 다시 유족들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분들이 살아온 시간을 음악으로 옮기고 싶었다"고 밝했다. 그는 유족의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모든 가사를 썼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시인들에게 맡겨봤지만 참사의 깊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단어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합창단 존재 이유에 대해 그는 "22년이 지난 지금 대구 시민들조차 참사를 잊고 지낼 때가 많다. 공연을 보면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기억을 떠올리는 분이 늘어난다"며 "우리가 노래하는 건 잊지 않기 위해서다. 누군가의 죽음이 사건 하나로만 소비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위촉곡은 '가사 전달'에 중심을 뒀다. 김 감독은 "유족의 사연이 핵심이니 음악적 기교보다 말이 정확히 들리는 게 중요했다"고 했다. 그는 국내 작곡가 4명에게 작업을 맡기며 "한 시즌 공연으로 끝나는 곡이 아니라 전국에서 오래 불릴 작품이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여러 신작 가운데 그는 조혜영 작곡가의 '바람되어 간다'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김 감독은 "신원 미상으로 무연고자 처리된 희생자 여섯 분이 있다"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분들의 존재를 다시 불러내고 싶었다. 가사 자체가 가슴을 세게 친다"고 말했다.
예술 활동이 치유로 이어지는지 묻자 김 감독은 "공연을 보면 시민들이 참사를 떠올리고 함께 아파한다. 그 과정이 유족에게도, 시민에게도 치유가 된다"고 말했다. 이번 위촉곡 제작에 시민 후원금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것도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였다. 그는 "많은 시민이 잊지 않고 동참해준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로"라고 전했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정치적 프레임이었다. 그는 "우린 정치와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 참사라는 소재 때문인지 일부가 색깔을 씌우려 한다. 그게 제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반대로 보람된 순간은 명확했다. 김 감독은 "유족의 이야기를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불러줄 때"라며 "그 노래 한 줄이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걸 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향후 계획도 분명했다. 김 감독은 "내년에 '우리들의 이야기 2편'을 만들어 4곡을 더 추가하고 싶다"며 "최종 목표는 12곡을 완성해 악보로 출판하고, 수익금을 유족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해외 참사 현장 단체와 합동 공연을 열어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작업도 언젠가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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