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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고운사에서

2025-12-08 06:00
류시경 시인·대구문인협회 자문위원

류시경 시인·대구문인협회 자문위원

며칠 전 지인이 보내온 고운사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쌀 한 되씩 메고 수학여행을 간 곳이라서 늘 마음의 고향처럼 애착이 남달랐었다. 지난 3월 경북 의성 산불로 고운사(孤雲寺)의 보물 전각인 연수전과 가운루 등 20여 채가 소실됐다는 사실은 뉴스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급히 고운사로 달려갔다. 의상대사(義湘)가 창건한 신라 시대 고찰이며, 최치원(崔致遠)의 호 고운(孤雲)을 따서 지금의 고운사가 되었다. 늦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도로가에 흩날리는 낙엽을 길가로 쓸어 모아 주었다. 주위 산은 산불에 잎들을 태워먹고 쓸쓸히 흐르는 구름만 바라보는 신세로 전락해 있었다. 절 입구는 어느 때보다 스산한 바람이 휙휙 몰아쳐서 산불이 스친 상처를 아물지 못하게 하는 듯했다.


절 입구 왼쪽의 최치원문학관은 강당을 제외하고 전소되어 출입마저 통제됐다. 최치원은 신라의 6두품이라는 신분제도의 한계를 넘기 위해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 가서 6년 만에 과거에 합격하고 문장으로 이름을 떨치다가 28세에 귀국해 '시무 10여조'의 국가 개혁안을 진성여왕께 올려 6두품 최고의 관직인 아찬에 올랐으나 진골들의 반대로 지방관을 전전하다가 시문에 전념한 불운한 천재였다.


텅 빈 문학관을 뒤로하며 최치원의 명시 오언절구 '추야우중(秋夜雨中)'을 떠올렸다.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린다(風唯苦吟)/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드물구나(世路少知音)'.


그 옛날 최치원이 머물렀다는 고운사의 가을 생각하며 조금 더 걸어가니 불탄 범종이 푹 주저앉아 있었다. 맨바닥에 앉았어도 나름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했다. 종각이 타버린 잔해 속에 범종의 찢어진 틈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들어와 놀고 있는 상태였다. 최치원의 시구와 범종이 오버랩되어 나그네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이번 화재로 고운사 사찰림의 98%가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그린피스와 사찰 당국은 사상 최초로 인공조림을 피하고 자연 복원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토양 안정성, 자연 회복 탄력성을 지켜보면서 특이하게도 흙이 적은 고운사의 사찰 환경을 감안해 자연 복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덧붙여 화재 잔해의 비참한 모습을 통해 중생들의 마음도 다스리고자 잔해를 당분간 그대로 두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무거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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