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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내 이름은 Only One

2025-12-10 06:00
서영옥 계명시민대학 강사, 미술학 박사

서영옥 계명시민대학 강사, 미술학 박사

노트북(空冊)을 샀다. 순한 표지 디자인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손안에 드는 크기와 두께도 마뜩하다. 학생들이 만들어서 아트페어에 내놓은 예쁜 공책이다. 몇 권을 더 사서 다른 학생들과 나누었더니 천원의 기쁨이 설렘으로 번진다.


설렘은 어릴 적 소풍 전날 밤과 닮았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다는 해방감의 예고 때문일 것이다. 설렘의 희망적인 속성은 성인이 되어도 유효하다. 미술관으로 현장학습 가기 전날도, 학습을 마친 후에 가진 짧은 티타임에도 설렘은 동반된다. 그날의 대화 주제는 '이름'으로 모아졌다.


한 학생이 고민을 털어놓는다. 누구의 엄마로 불릴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본명이 불릴 때마다 개명(改名) 충동이 인다는 것이다. 엄마의 정체성으로만 사느라 희미해진 '나'를 이름으로 새롭게 불러내고 싶은 듯하였다. 어쩌면 그가 찾는 것은 새 이름이 아니라 새롭게 불릴 수 있는 '나'인지도 모르겠다.


가족 속에 묻혀버린 그녀의 본명을 다시 불러낼 대안을 모색하고 싶었다. 공책을 나눈 이유였다. 누군가를 흉내 내지 않아도 된다. 넘어졌던 순간들, 다시 일어선 마음, 좋아하는 것과 품어온 꿈들을 공책에 적어 보자고 했다. 차곡차곡 쌓인 궤적이 삶의 무늬가 되어 자신을 다시 부를 이름이 되어주지 않을까 해서이다.


더 높고, 빠르고, 더 센 것에 주목하는 세상은 종종 비교의 잣대를 들이민다. 그 틈에서 나는 어디쯤에 서야 할지 망설인다. 이어령(1934~2022) 선생은 '나'를 'best one'이 아닌 'only one'에 두라고 했다. "백 명이라도 각자의 방향으로 달리면 모두가 1등이다"라는 선생의 말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선언이 아닐까 한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1817~1862)는 "우리가 한 번도 선택하지 않았지만 꼭 걸어보았으면 하고 바라는 오솔길처럼 이상적인 자기 내면의 어떤 길이 존재한다"고 했다. '나'를 기록하는 일도 소로우가 오솔길을 더듬듯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소풍 가듯 한 줄씩 공책을 채우다 보면 다가오는 알아차림이 있을 것이다. 특별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특별한 존재임을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Only One'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큰 위로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Only One'은 일종의 다짐이다.


낮이 짧아졌다.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이 계절의 끝자락에서 학생들과 예쁜 공책에 새 이름을 새겨보기로 하였다. 지금의 나를 확인하고 다음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세울 쉼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니 다시 설렌다.


서영옥 <계명시민대학 강사,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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