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제 견인하는 ‘이야기’
정치 쪽 봇물 견강부회 난무
尹 담화문 자아실현적 궤변
“현지 누나” 인사 농단 서사
치유와 통합의 메시지 절실
박규완 논설위원
"AI가 모든 산업을 재편한다. 인간을 대체한다. AI 강국이 미래의 패권국가다". 어쩌면 AI 경제는 이처럼 기대심리와 서사(敍事)로 움직일지 모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저서 '내러티브 경제학'에서 짚어준 맥락이 바로 그것이다. 데이터와 숫자 못잖게 '이야기'가 중요하단 의미다. 엔비디아는 AI 전환기의 내러티브 그 자체다. 엔비디아 주가에 따라 AI 거품론이 고양되거나 침잠한다. 구글의 TPU(텐서처리장치)와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의 경쟁 구도는 AI 경제의 서사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의 "인간 두뇌보다 1만배 뛰어난 ASI(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이야기는 미래 사회에 대한 기대심리를 자극한다.
AI 경제에만 내러티브가 작동할까. 정작 내러티브가 봇물을 이루는 곳은 정치 분야다. 더 많은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생성형 AI처럼 내러티브를 마구 생산한다. 그럴싸한 명분을 끌어대야 하니 궤변과 견강부회가 난무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1주년 대국민 담화가 그러하다. 비상계엄이 "자유헌정질서를 붕괴시키려는 체제 전복 기도에 맞서, 국민의 자유와 주권을 지키기 위한 헌법수호 책무의 결연한 이행"이라고? 특유의 뻔뻔함과 반헌법적 사유와 자가당착의 기만이 묻어난다. 계엄을 정당화하려는 내러티브일 텐데, 헌정질서 파괴범의 자아실현적 궤변에 공명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야당의 폭거에 맞선 계엄"이라며 확정편향의 내러티브에 동조했다. 윤석열 변호인들도 과거 꼴짭한 궤변을 쏟아냈다. "12·3 계엄은 내란이 아니라 소란" "계엄은 계몽령" "계엄 선포는 야당 경고용".
"훈식이 형, 현지 누나"는 인사 농단의 서사다. 민간 영역인 자동차산업협회장 인사까지 대통령실에서 원격 조종한다? 단순한 해프닝 같진 않다. 국민의힘은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의 사퇴를 "꼬리 자르기"로 의심한다. 김현지 제1부속실장은 "난 유탄을 맞았다. 김 전 비서관과는 누나·동생하는 사이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문고리 권력'의 인사 전횡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불거진 모양새다. "형·누나 호칭은 선배·동료를 살갑게 부르는 민주당의 언어 풍토"라는 박지원 의원의 엄호는 변명과 물타기 내러티브다. 사태의 본령은 인사청탁인데 호칭 문제로 초점을 흐린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니 우리가 아무리 이재명 정부 비판해도 국민의 마음에 다가가지 못한다. 계엄 사과하고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자". 원조 친윤 윤한홍 의원의 현실 직시 내러티브엔 반성과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사법제도는 한 번 바뀌면 사회 전반에 장기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릇된 개편은 국민에게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메시지는 민주당 주도의 사법개혁에 대한 방어 기제가 작동한 내러티브다. 위기감의 발로(發露)?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관철되면 대법원장의 인사·예산권은 사실상 형해화한다. 미국은 "마약집단=테러집단"의 내러티브를 동원해 베네수엘라 해상 및 영공 봉쇄를 정당화했다.
내러티브는 사건이나 현상을 시간·인과적으로 엮어 의미와 맥락을 전달하는 서사적 구조를 말한다. 어원은 라틴어 narrare다. 진영 논리와 이념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작금, 치유와 통합의 내러티브는 뭔가. 논설위원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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