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 계명시민대학 강사, 미술학 박사
방천시장을 다시 걸었다. 최근 기획전을 열어두고 매일 오가는 길이 되었다. 골목을 등불이 밝혔다. 김광석 거리는 문화 명소로 자리 잡은 듯하다. 활기찬 시장을 걷는데 설명하기 어려운 짠한 마음이 감돈다. 아마도 변화의 이면에 가려진 표정 때문이다.
16년 전이다. 방천시장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곳에서 '2009 방천시장 예술프로젝트'가 삶과 예술의 접점을 시도했다. 침체된 시장에 예술로 활력을 불어넣으려 한 시도였다. 필자는 당시 전 과정의 기록자로 참여했다. 약 6개월간 시장의 표정을 가까이서 살폈던 시간이다.
시장의 하루는 오롯이 춥고 더웠다. 불이 꺼진 골목에는 빈 점포가 여러 곳이었다. 세입자들은 비가 새는 지붕 아래서 비바람을 맞곤 했다. 월세 10만 원이 부담이던 점포에는 켜켜이 한숨이 쌓여갔다. 세입자들은 이 현장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시장의 시간을 견뎌온 존재들이다. 예술은 척박한 그 현실로 들어가 6개월간 시장과 한솥밥을 먹었다.
16년이 흐른 지금 시장 한켠에서는 김광석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아련한 노래는 추억을 싣고 또 다른 추억 속을 거닐게 한다. 덕분에 시장은 관광과 문화, 소비의 공간으로 재편되었다. 젊은 층의 유입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도시 재생과 문화 활성화라는 목표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셈이다.
짠한 마음은 여기서 시작된다. 삶과 예술의 접점을 찾던 예술프로젝트가 드러낸 선명한 명(明)과 암(暗)을 보게 된다. 골목이 묻는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변화는 희망의 이정표인가 아니면 뒤늦게 세워진 성찰의 표지판인가. 삶의 터전에서 배제된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위에 형성된 성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장을 지탱하던 영세 세입자들은 서서히 그곳에서 밀려났다. 예술프로젝트가 촉발한 공간적 가치는 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졌다. 사라진 삶의 자리를 애써 외면한 채 완성된 풍경은 결국 또 다른 배제를 낳는다. 예술프로젝트는 물리적 환경 개선이나 시각적 미관 향상만으로는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다.
건축가 승효상은 "터의 무늬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건축가의 중요한 임무다"라고 한 바 있다. 과거와 현재, 역사와 삶이 어우러진 공간의 흔적을 존중하는 태도는 건축만이 아니다. 삶과 예술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예술프로젝트가 지향해야 할 윤리이자 책임이 아닐까 한다.
예술은 결코 장식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미세한 틈'이다.
서영옥<계명시민대학 강사,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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