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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25-12-18 06:00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작곡가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작곡가

연말이 다가오면 우리는 유난히 많은 말을 하게 된다. 올 한 해를 정리하는 말, 다가올 새해를 다짐하는 말, 그리고 서로를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말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결과가 생기기도 한다. 다가오는 연말, 연극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침묵'의 무게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연극은 알베르 까뮈의 희곡 '오해'를 원작으로 한다. 내용은 이러하다. 인적이 드문 시골 여인숙을 운영하는 모녀는 투숙객들을 살해하고 그 돈으로 삶을 이어가던 어느 날, 방금 죽인 손님이 20년 전 집을 나간 아들이자 마르타의 오빠임을 알고 엄마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한 가족의 비극적 결말을 그린 부조리극이다.


이 비극은 잔혹함보다 아이러니에서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모녀가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상상하고 있었고, 20년 만에 찾아온 아들(얀) 역시 모녀를 본인이 책임지고 부유하게 살게 해주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꿈을 꾸었지만, 그 꿈들은 끝내 서로에게 닿지 못했다.


만약 아들(얀)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더라면, 이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까. 그는 상황을 지켜보며 놀라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침묵은 결국 가장 잔인한 칼날이 되어 자신을 향한다. 말하지 않았기에 그는 아들이자 오빠가 아닌, '낯선 여행객'으로 남았고, 그 선택은 칼보다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 연극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존재는 늙은 하인이다. 그는 말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족의 삶을 바라보며 거대한 돌을 밀어 올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이 장면은 시지프스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노동, 결말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행위. 까뮈가 말한 부조리한 인간의 삶이 이 침묵의 몸짓 안에 응축돼 있다. 하인은 사건을 바꾸지도 개입하지도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 관객은 오히려 삶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연말은 즐기기 좋은 시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멈춰 서서 나의 삶을 점검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이기도 하다. 혹시 내 삶이 누군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부조리극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내가 침묵으로 외면해 온 진실은 없는지 다시 돌아볼 시간이다. 올 한 해를 화려한 축제로만 마무리하는 대신, 내일과 내년을 더 단단히 살아가기 위한 질문을 던지는 연극 한 편을 만나는 것. 이 연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그런 사유의 시간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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