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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기다림의 미학

2025-12-22 06:00
류시경 시인·대구문인협회 자문위원

류시경 시인·대구문인협회 자문위원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의 끝자락에 우리는 무엇을 기다릴까.


분별력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가 서울 올라가시면 내려올 때 사탕이나 고무신 같은 것을 사오셨다. 그때의 나의 기다림은 사탕과 고무신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에 모여서 서울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기해하면서도 부러워한 것 같았다. 나는 서울이 지상이 아니고 공중에 떠 있는 어느 세상인가 하고 아련하게 생각했다. 시골 아이한테 '올라간다'는 것은 감나무에 감 따러 올라가는 것과 초가지붕 위에 널어놓은 고추를 거둘 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밖에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정적 증거는 어른들이 나의 양쪽 귀를 손바닥으로 눌러서 공중으로 바짝 들고 '서울 봤나?'할 때는 서울이 공중에 있다는 확신을 했다. 당시 여자 아이들은 '오빠 생각'이란 동요를 즐겨 불렀다. 비단 구두에 대한 아련한 슬픔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지난해 봄 부활절 오후 아양아트센터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고도(Godot)를 기다리며' 연극을 보았다. 원로 배우 신구(에스트라공 역)와 박근형(블라디미르 역)이 긴 대사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는 데 감동하여 모두가 찬사를 보냈다.


황량한 길가의 나무 한 그루가 전부인 배경은 시간이 흐르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정체된 분위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허무를 암시하고, 포조(Pozzo)와 럭키(Lucky)의 에피소드는 지배와 복종의 인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소년이 와서 "고도는 오늘은 못 오고 내일은 온대요"라고 한 말에서는 주제를 던져주는 느낌을 받았다.


고도(Godot)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존재를 끝없이 기다리는 상태를 의미하는 인간의 한계를 극한까지 탐구한 대표작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내일이나 기회를 상징하는 신 카이로스(Kairos)는 뒤통수에 머리카락이 없어 뒤에서는 절대로 잡을 수가 없다고 했듯이. 인간은 내일을 뒤에서 잡으려다가 오늘에만 머무는 운명적인 존재가 되었다.


고도는 오늘은 못 오고 내일은 온다고 한다. 그러나 내일은 지구가 빠른 자전 속도(1천670㎞/h)로 달아나기에 결국 오지 않는 미래이다. 우리는 오늘에 존재하며 내일에는 닿을 수 없다. 내일이 되면 그건 바로 오늘이니 내일은 언어와 상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내일을 기다린다. 서울 가신 아버지를 기다리고 비단 구두를 사 오실 오빠와 고도를 기다리듯 우리는 내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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