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51222022126169

영남일보TV

  • 저수지 옆에서 시작된 노래 한 판, 유가읍 한정1리의 노랫소리
  • [TK큐] 보이지 않는 사람까지 생각한 설계…웁살라의 이동권

[문화산책] 문화의 마중물

2025-12-23 06:00
여송하 박물관 휴르 관장

여송하 박물관 휴르 관장

박물관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은 늘 조심스럽다. 묵직한 문손잡이를 잡은 손이 잠시 망설이고, 한 걸음이 문턱 앞에서 머무른다.


그러나 그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이야말로, 문화가 시작되는 마중물이다. 거창한 설명보다 먼저, 몸이 공간 온도와 분위기에 반응하는 순간, 문화는 사람에게 스며든다.


여행을 떠나면 나는 자연스럽게 박물관을 먼저 찾는다. 그중 뉴욕은 '빅 애플'(Big Apple)이라 불리는 도시로, 세계의 문화와 시간이 모여드는 곳이다. 구겐하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자연사박물관 등 이름에 '뮤지엄(Museum)'이 들어간 크고 작은 문화 공간이 한 도시에 모여 있었다. 건물과 소장품, 그 안에 쌓인 시간까지 압도적이었다. 하루 종일 머물러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미술관에서는 예술과 시간이 맞물려 흐르고,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해 온 긴 과정이 차분히 펼쳐졌다. 그 속에서 나는 '보는 것'보다 '머무는 것'의 감각을 배웠다.


문화산책 게재를 이어가며 나는 그 경험을 자주 떠올린다. 문화는 크고 유명한 건물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따라 살아난다는 사실을. 여행지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느꼈던 몰입 역시, 문화가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붙잡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립박물관은 대개 크지 않다. 웅장한 외관이나 끝없이 이어지는 전시실은 없지만, 일상의 동선 가까이에 있어 누구나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다. 동네 골목 끝, 산책길 옆, 아이 손을 잡고 가볍게 들를 수 있는 거리. 그래서 이곳은 문화의 중심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처음 발을 들이는 낮은 문턱, 곧 문화의 마중물이 되는 자리다.


이곳에서는 설명보다 관계가 먼저 온다. 얼굴을 기억하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나눈다. 관람객뿐 아니라 시간을 내어 찾아오는 봉사자분들, 공간을 지키는 손길들이 함께 이 문턱을 유지한다. 그런 작은 연결들이 쌓여 문화는 자란다.


문화는 한 번의 방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첫 발걸음이 없다면 다음은 없다. 사립박물관이 맡고 있는 역할은 바로 그 첫 순간이다.


작고 조용하지만, 그래서 더욱 중요한 자리. 낮은 문턱에서 시작된 마중물이 오늘도 누군가의 세상을 조금 다르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이 산책길 위에서, 문화와 사람이 여전히 나란히 머물 수 있음을 조용히 확인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