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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문을 열어두는 이유

2025-12-30 06:00
여송하 박물관 휴르 관장

여송하 박물관 휴르 관장

박물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때로 고독한 일이다. 관람객이 드문 날도 있고, 문을 열어도 아무도 오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문득,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하지만 그 답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누군가의 발걸음과 함께 찾아온다.


여름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도 그랬다. 우산을 써도 옷이 흠뻑 젖을 만큼 비가 쏟아졌고,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세찬 빗줄기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이런 날씨에 아무도 오지 않겠지,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때 박물관의 문이 열렸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부엉이 인형을 꼭 끌어안은 아이가 들어섰다. 비에 젖은 신발과 옷차림이었지만, 아이의 눈빛만큼은 반짝였다.


부모는 아이가 부엉이를 무척 좋아해 인터넷으로 관련 장소를 찾다가, 대구에 부엉이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망설이다가 열차를 예매했고, 그렇게 서울에서 아이와 함께 즉흥적인 여행을 떠나 이곳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라앉아 있던 마음에 다시 힘이 들어왔다. 비에 젖은 하루도, 한산하던 공간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 문을 열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이곳이 단순히 전시를 보는 장소가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하러 오는 목적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아이는 한 시간 남짓 박물관을 둘러보며 작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전시된 부엉이 조각상 앞에서 한참을 서 있기도 하고, 자신이 들고 온 인형과 비교하며 웃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모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떠나기 전 아이는 방명록에 서툰 글씨로 "부엉이 정말 좋아요"라고 적었다. 그 짧은 문장은, 이 문을 계속 열어두는 이유가 되었다.


문화는 언제나 거창한 순간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때로는 태풍이 몰아치는 날, 한 아이가 꼭 쥔 인형 하나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사립박물관이 크지 않아도 문을 닫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런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이 지면을 통해 박물관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감사했다. 매주 이어진 작은 일상들을 나누며, 문화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이 글로 '문화산책'을 잠시 내려놓지만, 박물관의 문은 앞으로도 열려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문 앞에 서고, 또 누군가는 한 걸음을 들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이 문을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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