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 영물로 군림한 말
오전·오후 가르는 역동적 상징
지역 산재한 말 관련 지명 눈길
김지연 '일월오봉도 해의 말'. 대구동구문화재단 아양아트센터는 오는 11일까지 열리는 '2026 병오년(丙午年) 새해맞이 말(馬) 그림'展(전)을 통해 작가 120여 명의 말 작품을 선보인다.<대구동구문화재단 제공>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 이른바 '말의 해'다. 천간(天干)의 '병(丙)'은 강렬한 불을, 지지(地支)의 '오(午)'는 말을 상징해 '붉은 말의 해'로도 불린다. 역법상으로는 오는 2월17일 설날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병오년의 막이 오른다.
십이지신 중 일곱 번째인 말은 정남(正南) 방향을 지키는 영물이다.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나 생명력이 분출하는 음력 5월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오전(午前)'과 '오후(午後)'라는 시간적 개념 역시 말의 시간인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를 기준으로 나뉜다.
◆신화 속의 매개자, 말(馬)
우리 역사 속에서 말은 단순한 가축 그 이상의 의미였다. 신라 건국 신화에서 말은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매개자로 묘사된다.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알을 세상에 전한 존재도 하늘에서 내려온 백마였다.
이러한 말의 신비로운 형상은 1973년 경주 천마총 발굴 당시 발견된 국보 제207호 '천마도'를 통해 구체화됐다. 천마도는 말 안장 옆에 늘어뜨린 '말다래(장니)'에 그려진 그림으로, 고대인들이 투영한 말의 역동적인 기상을 보여주는 정수다.
근대 이전 전쟁터에서 기마병은 오늘날의 탱크나 장갑차에 비견되는 핵심 전력이었다. 경북 경산 압량읍의 연못 '마위지'는 이러한 역사의 장소다. 삼국시대 신라의 압량주 군주로 부임한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이 군마들에게 물을 먹이던 곳으로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마위지 인근 영남대학교의 상징 동물 또한 '천마'다.
경마공원 개장을 앞둔 경북 영천 역시 말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고장이다. 조선시대 한성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던 조선통신사 일행이 영남 지역에서 합류하던 거점이 바로 영천이었다. 이곳은 통신사를 환송하는 전별연과 함께, 말 위에서 화려한 기예를 선보이는 마상재가 성대하게 열리던 곳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말과 관련된 이미지는 긍정적으로 사용 중이다. 유명 자동차 기업이나 명품 브랜드의 상징으로 활용되며 고급스러움을 드러내는 마케팅의 최전선에 자리해 있다.
◆"팔자 세다"는 근거 없는 속설의 정체
하지만 십이지신 중 말만큼 억울한 누명을 쓴 존재도 없다. 한때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말띠 여성은 팔자가 세다'는 근거 없는 속설 때문이다. 이 편견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혼사를 앞둔 말띠 여성들을 곤란하게 만든 사회적 악습이었다.
1966년 1월1일 자 영남일보 기사 등에 따르면, 이 속설은 조선 말기 일본에서 유입된 것이라는 추측이 중론이다. 역학 전문가들은 "사람의 운명은 사주(四柱) 전체의 원리에 따르는 것이지, 단순히 띠 하나만으로 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구경북 곳곳에 남은 말의 발자취
대구경북의 지명에서도 말의 흔적은 역력하다. 국토지리정보원 자료(2014년 기준)에 따르면 지역의 말 관련 지명은 총 103개(대구 1, 경북 102)에 달한다. 경북은 전남(142개)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말 관련 지명이 많은 곳이다.
대표적으로 경북 포항 남구 구룡포 일대에는 조선시대 국영 목장의 흔적인 '말봉재'가 남아있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마비정(馬飛亭) 마을'에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말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 밖에도 지형이 말의 형상을 닮았다는 경주 '거마골', 군위 '마시리', 안동 '말봉' 등 말과 관련된 지명들이 경북도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에 말이 얼마나 깊이 투영돼 있었는지를 실감케 한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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