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민선 대구시장’ 문희갑에 대구의 미래를 묻다
신공항·행정통합·신청사…기준은 ‘현실성과 실행 가능성’
“모든 걸 하려다 아무것도 못 한다” 선택과 집중 주문
차기 시장 리더십에 쓴소리 “비판 감수할 결단 필요”
문희갑 전 대구시장이 인터뷰에 앞서 미소를 짓고 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는 대구의 현재와 미래를 향한 문제의식을 놓지 않고 있다.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1937년생 미수(88세)의 문희갑 전 대구시장은 정·관계를 떠난지 오래지만, 시선은 여전히 대구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서 만난 그는 7년간 대구 시정을 이끌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대구를 두고 "침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사라졌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그의 진단은 과거를 돌아보는 회상이 아니다. 정치와 행정, 시민사회가 각자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도시는 서서히 활력을 잃어 왔다는 문제 제기다. 신공항, 행정통합, 신청사 등 굵직한 현안을 바라보는 그의 기준은 분명하다. 정치적 성과가 아니라 현실성과 실행 가능성이다.
문 전 시장은 자신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경고할 책임을 지닌 원로의 자리에 두고 있다. 고택이 자리한 조용한 공간에서 이어진 그의 말은 때로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지금의 대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이 담겨 있다.<편집자주>
▶정치의 중심에서 물러난 지금,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사회는 전반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에서 기준이 무너졌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공통의 합의는 눈에 띄게 약해졌다. 과거에는 사회가 비록 갈등을 겪더라도 최소한 지켜야 할 선과 방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었다. 지금은 각자가 자기 입장과 이해 관계만을 앞세우는 사회가 됐다. 공동체를 지탱하던 기본 질서가 느슨해졌고, 그 결과 사회 전체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느낀다.
공직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삶이 느슨해지거나 쉬는 국면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내가 평생 쌓아온 행정 경험과 경영 감각, 중앙과 지방을 오가며 얻은 판단을 차분히 정리해 후진 세대에 전해야 할 시기다. 과거에는 권한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지금은 판단의 이유와 결과를 설명하고 경고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결정의 책임에서 벗어난 대신, 말의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고 느낀다.
특히 젊은 세대에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지금 젊은 세대는 학교 교육 외에는 사회를 이해하고 공동체를 배우는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다. 학교 교육은 시험과 성적 중심의 지식 전달에 머물러 있고, 지역 발전이 왜 중요한지, 국가 발전이 개인의 삶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사회교육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런 교육의 공백 속에서 젊은 세대가 사회 전체를 조망하고 장기적인 시야를 갖기란 매우 어렵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기본 인식을 갖추지 못하면 사회는 건강해질 수 없고, 사회가 흔들리면 국가는 제대로 설 수 없다.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지금도 기회가 닿는 한 내 생각을 정리해 젊은 세대와 나누려 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의 일상이자, 원로로서 회피해서는 안 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달성군 화원읍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서 인터뷰 중인 문희갑(왼쪽) 전 대구시장과 진식 영남일보 정치에디터. 문 전 시장은 대구의 현재와 미래를 두고 원로의 시선에서 진단을 내놨다.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아주 건강해 보이는데, 비결은.
"특별한 건강 비결은 없다. 다만 늘 긴장감을 놓지 않고 살아온 삶의 태도가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 공직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퇴임 이후에도 사회와 지역을 완전히 놓아본 적이 없다.
대구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도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사소한 사안이라도 직접 보고 판단하려 했고, 현안을 남에게만 맡기지 않으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역의 흐름을 보고, 정치의 변화를 살피고,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사람은 몸이 늙기 전에 생각이 먼저 굳는다. 생각을 멈추는 순간부터 쇠퇴는 시작된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문제의식을 유지하며, 사회와 연결된 상태로 살아가는 태도가 결국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함께 유지하게 만든다."
▶대구시장 재임 시절 성취와 아쉬움은.
"대구시장으로 일할 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대구만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다. 1995년 6월 1일 취임한 날부터 2002년 6월 말 퇴임할 때까지의 장면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루하루가 치열했고, 선택 하나하나가 도시의 미래와 연결돼 있다는 부담 속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시장 재임 기간 동안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현장을 다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도시 행정은 보고서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직접 보고, 직접 듣고, 직접 느껴야 도시의 구조와 문제의 본질이 보인다. 대구 시내 곳곳을 다니며 도시의 장단점을 몸으로 확인했고, 어떤 공간은 살리고 어떤 구조는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책의 방향 자체를 후회하는 부분은 크지 않다. 다만 가장 아쉬운 점은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도시 정책은 계획을 세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삶 속에 뿌리내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7년 동안 쉼 없이 일했지만, 시작해 놓고 충분히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점이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다."
달성군 화원읍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서 만난 문희갑 전 대구시장. 그는 공직을 떠난 뒤에도 대구의 방향과 미래를 놓고 깊은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퇴임 이후 여러 시장들이 대구 시정을 이끌어 왔다. 대구의 장기적 변화라는 기준에서 평가한다면.
"역대 시장은 출신이나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대구를 위해 실제로 무엇을 남겼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정치적 언어와 수사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도시의 구조와 정책은 오랫동안 남는다. 따라서 결과와 성과가 평가의 기준이 돼야 한다.
김범일 전 시장은 앞산터널 등 도시 교통 구조를 바꾸는 사업을 남겼다. 권영진 전 시장은 물산업과 로봇산업 등 첨단 산업 분야의 문을 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대구는 장기적인 비전이 분명하지 않았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사업에 행정력과 정치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을 미루거나 놓친 경우가 반복됐다. 대구는 모든 것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 판단이 일관되게 이어지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
▶지금 대구의 상황을 한마디로 진단한다면.
"대구는 지금 방향을 잃은 도시다. 침체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점이다. 도시가 발전하려면 최소한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지금 대구에는 그 공감대가 눈에 띄게 약하다.
다른 도시들을 보면 부족해도 방향은 분명하다. 부산은 해양·금융·관광이라는 큰 틀이 있고, 울산은 산업 고도화라는 목표가 있다. 인천은 국제도시라는 비전이 비교적 또렷하다. 대구는 이런 장기적 방향 설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은 선거와 공천에 매달리고, 행정은 책임을 회피하려 하며, 시민사회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 세 축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대구는 위기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지 못하는 도시가 됐다."
달성군 화원읍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서 인터뷰 중인 문희갑 전 대구시장. 그는 "대구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합의가 사라졌다"고 진단했다.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대구에는 '어른'과 '원로'가 없다는 지적을 해왔다. 그 의미는.
"원로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경험과 책임, 그리고 공적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 갈등이 생겼을 때 나서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을 말한다. 대구에는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인물이 많지 않다.
다른 지역을 보면 갈등이 커질 때 원로들이 나서서 조정하고 수습하는 경우가 있다. 대구는 그런 구조가 약하다. 정치권은 이해 관계에 묶여 있고, 사회 원로층은 침묵하거나 중앙으로 떠났다. 그 결과 대구는 위기 상황에서도 조정자 없이 흔들리고 있다."
▶TK공항(대구경북민·관통합통항), 행정통합, 신청사 건립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한 견해는.
"모든 정책의 기준은 현실성과 실행 가능성이다. 속도나 정치적 성과가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TK공항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공항은 도시 경쟁력과 직결된 시설이다. 접근성이 떨어지면 오히려 도시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기존 공항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군사·안보 문제를 포함해 실제로 가능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역시 필요성과 별개로 실행 가능성을 먼저 봐야 한다. 가능성이 낮은 사안을 붙잡고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가는 것은 도시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신청사 건립도 마찬가지다. 지금 대구에는 새 청사를 지을 재정 여력이 없다. 도심에는 활용 가능한 건물이 많다.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차기 대구시장에게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지금 대구에는 돌파형 리더십이 필요하다. 관리형 리더십은 안정기에는 의미가 있지만, 위기 국면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조정형 리더십 역시 이해관계가 복잡한 상황에서는 필요하지만, 방향 자체가 흐려진 도시에는 충분하지 않다.
돌파형 리더십은 무조건 밀어붙이는 리더십이 아니다. 행정 구조를 이해하고, 중앙정부와 협상할 수 있으며, 국제 감각과 경제 감각, 문화·관광에 대한 이해까지 갖춘 종합적인 리더십이다. 동시에 필요하다면 반대를 무릅쓰고 결단할 수 있는 용기를 포함한다.
대구는 오랫동안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익숙한 도시였다. 돌파형 리더십은 그 틀을 깨고 '어떻게 하면 되게 만들 것인가'를 끝까지 고민하는 리더십이다. 중앙정부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요구할 것은 분명히 요구하고, 설득할 것은 설득해야 한다. 기다린다고 해서 몫이 돌아오지 않는다.
차기 대구시장은 무난한 관리자가 아니라,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대구의 10년, 20년 뒤를 보고 결단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고택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미소 짓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 달성군 화원읍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서 그는 원로의 시선으로 대구의 현재를 차분히 짚었다.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대구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문제를 직시하는 태도다. 대구는 아직도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대구가 여전히 괜찮은 도시라는 인식이 남아 있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인구는 줄고, 산업 경쟁력은 약해지고, 청년은 떠나고 있다. 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시작될 수 없다.
정치가 바뀌지 않는 이유는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이 묻지 않고, 따지지 않고,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 정치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 정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정당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선택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시민의식 변화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선거 때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지역 정치와 행정을 지켜보고 질문하는 태도다. 잘한 것은 분명히 평가하고, 잘못한 것은 분명히 비판하는 시민이 많아질 때 정치도 행정도 달라진다.
대구가 다시 도약하려면 정치만 바뀌어서는 안 된다. 행정, 언론, 시민사회가 함께 변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식 변화다. 대구의 미래는 누가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대구 시민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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