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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소매치기가 외면한 행운

2026-01-19 06:00
장수영 수필가

장수영 수필가

"아니, 지갑이 왜 여기 있지?"


여행의 끝자락, 파리 샤를 드골 공항으로 향하는 셔틀 열차 안에서 K는 놀라 소리쳤다. 몸에 밀착된 가방 깊숙이 넣어두었던 지갑이 가방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K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찰나의 순간, 누군가의 검은 손길이 K의 가방을 헤집고 지나간 것이다.


문득, 열차를 타기 전의 혼란이 떠올랐다. 공항 열차를 타는 정류장에 열차가 들어서자, 차례를 무시하고 사람들을 밀치며 올라타는 무리가 있었다. 우리는 가방을 움켜쥐고 주변을 경계했지만, 중심을 잡기조차 힘든 혼잡함에 경계심을 순간 잊었다. 어리바리한 우리의 모습이 이미 그들의 눈에 표적이 되어 있었다.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짧은 순간에도 소매치기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소매치기는 미성년자부터 성인까지, 망설임 없이 가방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들키면 아무 일 없는 듯 지갑을 돌려주는 뻔뻔함. 그들의 뻔뻔함에 되레 우리가 눈을 피해야 했다. 호시탐탐 이방인의 주머니를 노리는 시선 앞에서 여행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긴장의 연속이었다.


k는 떨리는 손으로 지갑을 열었다. 다행히 내용물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안도의 한숨 끝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원화가 가치가 없나? 십만 원이나 들어 있었는데 그대로네. 기분이 참 이상하네." 소매치기에게는 원화(元貨)가 쓸모없는 종이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환전은 번거롭고 신분 노출도 되니, 그들에게 외면당한 우리 화폐 덕분에 화를 면하긴 했지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노릇이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소매치기가 득실거렸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대부분 현금만 사용하던 시대였다. 이제는 현금을 소지하지 않고 카드가 보편화되고, 촘촘한 감시 시스템 설치로 인해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은 카페 테이블 위에 지갑과 노트북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안전할 만큼 국민의 의식도 높아졌다.


파리 여행에서 겪은 소동은 고국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소매치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날이 얼마나 안전한 삶인지 새삼 깨달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문을 나서며 익숙한 공기를 들이마실 때, 나도 모르게 잊고 살았던 안전을 새삼 떠올린다. "휴, 역시 우리나라 좋은 나라." 그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원화(元貨)가, 이곳에서는 나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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