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지 독립 큐레이터
종종 전시장을 나서며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 말에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묘한 미안함과 부담감도 섞여 있다. 현대미술은 너무 설명적이거나, 혹은 설명을 지나치게 생략하는 두 지점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래서 전시를 만들 때마다 나는 누구의 언어로 말해야 할지, 관람객은 그 언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전시는 많은 세계를 동시에 담고 있다. 작가의 세계, 기획자의 세계, 시대의 감각, 그리고 그 안에 놓인 사회적 맥락까지. 문제는 이 여러 세계들이 종종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데 있다. 작가의 언어는 감각적이고, 이론의 언어는 개념적이며, 관객의 언어는 일상적이다. 이 언어들이 서로 어긋날 때, 전시는 '어렵다'는 인상을 남기게 된다.
어려운 전시가 곧 좋은 전시인 것은 아니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작업일수록 더 공을 들여 잘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쉬운 언어로만 말한다고 해서 질문의 깊이가 얕아지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종종 '번역'을 한다는 마음으로 작가의 언어를 관객의 언어로 옮기고, 이론의 언어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려 한다.
그래서 기획자란 서로 다른 세계들의 언어를 이어주는 번역가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번역은 늘 불완전하다. 어떤 의미는 옮기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어떤 뉘앙스는 다른 감정으로 바뀐다. 그럼에도 나는 이 불완전함이 전시의 본질에 가깝다고 느낀다. 전시장은 완성된 답을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라, 각자의 질문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전시를 보며 '이해하는 것'에 중점을 두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언어로 질문해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감각적인 언어와 어려운 이론적 개념을 일상의 언어로 쉽게 전달하는 작업도 재미있지만, 때로는 이해되지 않아도 작품 앞에 멈춰 서서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는 전시도 만들어보고 싶다.
나 역시 얼마나, 그리고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 모든 것을 이해시킬 수 없다면 각자만의 질문을 가져갈 수 있도록 돕는 편이 나을지 수차례 고민한다. 그래서 나에게도 전시는 여전히 어렵다.
김은지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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