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현 전 대구 수성구의원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상투적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2026년 1월 25일,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베트남 호찌민 출장 중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났다. 그 부재는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방향을 바꿔온 한 사람의 '중량'이 얼마나 컸는지, 뒤늦게 실감하게 만든다. 그는 엄혹했던 독재의 시절에는 거리의 투사였고, 민주정부에서는 유능한 행정가였으며, 당에는 이기는 길을 제시하던 전략가였다.
청년 이해찬에게 정치는 생존이 아니라 실존의 문제였다. 유신 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그는 숨지 않았다. 민청학련 사건과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르며 그는 꺾이기보다 더 단단해졌다. "정치는 도피가 아니라 책임"이라는 신념은 훗날, 재야 출신 정치인들이 빠지기 쉬운 관념적 급진성을 넘어 '실사구시'의 행정가로 나아가게 한 뿌리가 되었다.
우리가 그를 깊이 애도하는 이유는 그가 단지 민주화를 외쳤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민주주의라는 추상적 가치를 '정책'이라는 구체적 그릇에 담아내려 싸웠던 설계자였다.
교육부 장관 시절 그는 BK21의 출범을 주도하며 대학 연구·대학원 역량 강화의 기틀을 놓았다. 동시에 교원 정년을 단계적으로 단축하는 결단을 통해 교육 현장의 세대교체를 추진했다. 당시의 거센 반발을 뚝심으로 통과시키지 못했다면, 우리 교육의 구조개혁은 더 늦어졌을지 모른다.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2004년 6월~2006년 3월)로서 보여준 모습은 '책임 총리'의 전형에 가까웠다. 그는 갈등을 피하지 않았다. 근 20년을 끌어온 방폐장 부지 문제를 주민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로 매듭지은 일은, 사회적 난제를 '정면 돌파'로 해결해낸 행정가로서의 역량을 상징한다.
무엇보다 그는 '세종'이라는 거대한 유산을 남겼다. 수도권 집중이라는 국가적 병증을 고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고,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라는 암초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대안의 설계로 방향을 틀어 끝내 허허벌판에 도시의 뼈대를 세웠다. 지금의 세종은 단순한 행정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골고루 살아야 한다는 '국가 균형발전'의 상징으로 숨 쉬고 있다.
그의 정치는 때로 매섭고 거칠다는 평가를 받았다. 타협보다 원칙을, 인기보다 성과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깐깐함의 바탕에는 언제나 역사와 약자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다. 그는 권력을 누리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한 도구로서 권력을 다뤘다.
고인의 삶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질문 앞에 선다. "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의 생은 이렇게 답한다. 정치는 가장 힘없는 이들의 불안한 내일을 오늘의 의제로 끌어올려, 끝내 제도로 안착시키는 일이라고.
이제 '이해찬'이라는 이름은 역사라는 책갈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설계한 교육 정책의 흔적 속에서, 그가 세운 도시의 시간 속에서, 그가 다진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가 걸어온 길을 기억하는 것은 남은 자들의 의무다.
엄혹한 겨울을 견디며 끝내 민주주의의 봄을 경작해낸 농부, 이해찬. 부디 그곳에서는 역사의 짐을 내려놓고 평안하시기를 빈다.
김두현<전 대구 수성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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