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Spain, 2019, 120x160㎝
사람들의 고개가 연신 갸웃댄다. 그림인가 사진인가, 낮인가 밤인가, 현실인가 가상인가. 작품의 장르도 시간도 촬영된 공간도, 아름다운 빛의 정체도 작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워낙 신비하고 오묘하며 아름답고 특별한 작업이라 사진가 이정록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간혹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두고 분명 디지털 후작업을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빛으로 숲 너머 신화의 세계를 열고, 빛나는 나비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채우고, 신이 빚은 땅 아이슬란드를 밝히고, 시련을 이겨낸 식물의 향기를 빛으로 그려내니 말이다. 하지만 결론은 디지털 작업이 아니다.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예품을 만들 듯, 작가는 어둠 속에서 찰나의 빛을 하나하나 밝혀간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쌓인 빛들이 필름 위에 그려낸 그림 같은 사진, 그것이 이정록의 작업이다.
작가가 촬영장소에 서 있다. 그저 풍경이 아름다워 낙점한 곳이 아니다. '작업의 콘셉트'라는 안경을 쓰고 오랜 시간 자연을 관찰하며 돌아다닌 끝에 발견한, 왠지 모르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장소다. 이정록은 햇살 좋은 날의 광활한 갯벌이나 해 뜨기 직전 안개 자욱한 호수를 대할 때면 현실을 넘어 피안의 세계에 성큼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고대의 인간들이 성소라 여겼을 법한 공간, 비밀스러운 의식이 이루어졌을 것만 같은 풍경. 그렇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공간에서 명상을 통해 얻어낸 교감을 풍경 위에 담아내는 것이 이정록의 작업이다. 자신만의 은밀한 사적 성소를 찾은 그는 오가고, 노닐고, 관찰하고, 명상하며 가장 마음에 드는 빛과 공기를 만나는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Spain, 2019, 90x120㎝
우리는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빛의 존재가 없으면 사진도 존재할 수 없다는 명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Photography, 사진이라는 단어도 빛(photo)으로 그린다(graph)는 뜻을 지닌다. 색과 대비를 결정하고, 형태와 그림자를 만들며, 빛은 시간과 함께 사진의 본질적 구성요소가 된다. 사진을 어떤 이야기로 읽히게 할지, 어떤 의미를 남길지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기에 사진가들은 '빛'을 그 존재 자체로 추앙한다. 그런데 사진가 이정록이 그려낸 빛은 결이 사뭇 다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공유하는 태양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 '나만의 사적인 빛'이라 표현한 그 빛, 그 빛의 정체는 무엇일까.
공간과 교감한 느낌을 구현하는 것,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머릿속에 분명한 이미지가 있지만 결과물에 만족하는 일 또한 드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이어져야 하는 지난한 도전에 가까웠다. 감정의 시각화를 위해 그는 순간광을 선택했다. 번쩍이고 사라져버리는 찰나의 빛, 분명 존재하지만 동시에 붙잡을 수 없는 에너지. 작가만의 '사적인 빛'은 오로지 필름 위에만 흔적을 남길 뿐, 대상에게는 어떠한 상처도, 개입도,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모두가 공유하는 태양의 빛이 아닌, 자신만의 빛을 그려내는 방식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완성되었다. 감나무 끝 새싹에 스친 한순간의 빛을 다시 그리기 위해 4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니, 그의 작업이 얼마나 진심 어린 경이로운 여정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나주, 전남, 2025, 90x120㎝
빛과 어둠은 서로를 드러내는 양면이다. 어둠은 작가의 내면에서 소음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작가는 그때 비로소 공간이 전하는 에너지 속으로 깊숙이 침잠한다. 밤과 낮의 경계가 흐려지고 빛과 어둠이 뒤섞이며, 공간 깊숙이 잠들어 있던 기운이 드러나는 순간 그는 그 에너지를 천천히 필름 위로 길어 올린다. 오랜 로케이션 조사, 일주일 이상 이어지는 촬영 테스트, 중노동에 가까운 설치작업, 길게는 8시간을 버텨야 하는 절대고독의 시간. 빛을 쌓기 위해 때로는 오리걸음으로, 때로는 물속을 오가야 하는 이 작업에 과연 '행복'이라는 단어를 견줄 수 있을까. 캄캄한 밤, 완성된 화면을 짐작하기도 어렵고, 세찬 바람에 대형 카메라가 흔들리면 그간의 공은 허사가 된다. 밤이 무너지기 전, 형상 없는 느낌을 붙잡아야 하는 시간 속에서 빽빽하게 조여오는 중압감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촬영 내내 '희열'을 느꼈다고 말한다. 출산의 고통은 잊고 육아의 행복만을 기억하듯, 이정록 역시 그렇게 자신만의 사적인 빛과 혼신의 사랑에 빠져있다.
혹자는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소재가 무궁무진하다고 말이다. 이정록의 표현처럼 그의 작업은 '낯선 장소와 자신을 부딪치게 하여 남긴 이미지의 흔적'이니, 이 세상 99%의 장소가 모두 작업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그것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때의 이야기이지만. 작가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잠시 혼자 걷고 싶었던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했다. 복잡한 길 찾기 대신, 노란 화살표만 따라 걸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루트 중 800㎞에 이르는 '카미노 프란세스'를 택한 그는 배낭을 메고 첫 도보여행에 나섰다. 돌과 나무를 어루만지고, 꽃과 풀의 향기를 들이키며, 땅과 숲이 품은 미묘한 기운에 감탄했다. 계절이 바뀌고, 바람과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길 위에 오래 머물렀다. 그가 마주한 길은 종교적, 역사적 의미의 순례지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느낌'과 교감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빛나는 나비들이 작가의 순례를 밝혔다.
Iceland, 2019, 152x120㎝
지난 30년간 이정록의 작업은, 자신만의 '사적 성소'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를 끌어당기는 장소에 머물며 공간이 지닌 미세한 떨림과 공명해왔다. 앙코르와트, 카파도키아, 산티아고와 같은 해외의 장소들은 오랜 시간 인류의 영적 열망이 축적된 '공적 성소'였다. 아이슬란드 역시 그런 여정의 연장선에 있을 것이라는 건 작가의 착각이었다. 늘 작업의 중심에 있던 '자신'이 투명해지는 경험을 했다. 용암의 열기와 빙하의 냉기가 격렬하게 부딪히는 땅. 고요한 침잠 대신 영혼까지 몰아치는 에너지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다. 생명이 막 움트던 태초의 순간처럼 다가온 감각은 바로 에너지의 기원, 그의 모험이 새롭게 시작됐다.
화순, 전남, 2025, 90x120㎝
요즘 이정록에게는 직업이 하나 더 생겼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드너'다. 작업실을 전남 화순으로 옮긴 뒤 장미를 심고 나무를 가꾸며 제법 근사한 정원을 만들어냈다. 시골에 머물며 오감은 자연히 더 예민해졌고, 작업실 주변의 자연을 돌아보는 로케이션 코스가 생기면서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식물이 지닌 '향기의 언어'였다. 꽃의 향기뿐 아니라 잎의 향기, 나무의 향기까지, 이전에는 스쳐 지나갔던 감각들이 또 다른 존재의 형태로 다가왔다. 김춘수의 '꽃'처럼, 어린 왕자가 여우를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존재의 향기 위로 지속광을 덧입히는 작업을 통해 소중한 만남을 기록하고 있다.
사유원, 군위, 대구, 2025, 152x120㎝
작은 정원을 꾸미던 가드너가 최근에 꼭 만나 확인하고 싶다는 장소가 있었다. 드넓고 광활한 정원, 바로 대구 군위에 위치한 사유원이다. 지형과 나무, 빛의 방향이 고유의 질서를 찾아낸 정원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계, 그 자체였다. 모과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풍설기천년은 그를 다시 명상의 상태로 이끈다. 오래전 팔공산 자락에서 신에게 제를 올리던 기운이 한자리에 모여드는 듯한 감각이었다. 이곳 역시 쉽게 만족을 내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는 끈질기게 나무와 빛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하며 자신만의 '사적인 빛'을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했다. 지치지도 않는 걸까. 작가 이정록은 지금도 자신만의 느낌을 이끄는 공간을 찾아 길을 나선다. 고요한 명상과 침잠, 자연과의 내밀한 공명을 통해 화면 가득 신비스런 에너지로 가득한 찰나의 빛을 쌓으며 말이다.
사유원, 군위, 대구, 2025, 160x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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