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체 간 행정통합 추진
‘각자도생’의 길 접어들어
대구경북 통합 세 번째 도전
생존 위해선 큰 그림 그려야
우물쭈물하다 후회만 남아
분위기가 심상찮다. 광역단체 간 행정통합 추진에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불과 몇주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부산·경남은 '속도' 대신 '신중'을 택했다. 주민의 선택과 법·제도적 기반 위에서 통합이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민주당이 발의한 통합특별법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 이장우 대전시장의 성화는 더욱 크다. "지방분권을 훼손하는 법"이라고 질타했다. 광주·전남은 통합과 관련한 시도지사 긴급 연석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도생으로 길로 접어 든 셈이다.
대구경북 통합을 놓고도 다양한 말들이 나온다. 공론화가 부족하다, 시·도민의 뜻을 더 들어야 한다, 청사 위치는 어디로 정해져야 한다는 식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여전하다. 세 번째 도전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통합 과정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경청해야 마땅하다. 대구가 경북을 흡수할 것이란 우려도, 행정 효율성만 쫓다 민주성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다만 그것들이 통합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돼선 안 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부작용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작위(不作爲)'야말로 가장 큰 실패이자 직무유기다. 갈등은 조정하면 되고, 부족한 점은 보완하면 된다.
주민투표도 좋고, 여론수렴도 필요하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완벽한 안'을 만들려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지방은 지금 '응급실'에 누워 있다. 그것도 산소호흡기를 뗄지 말지를 고민하는 중환자 신세다.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은 이미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을, 경제력의 7할을 집어삼켰다. 대구경북이 사이좋게 소멸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과거를 복기해 보자. 우리는 이미 수차례 통합 논의를 했다가 흐지부지 끝낸 전력이 있다. 그때마다 발목을 잡은 건 거창한 이념이 아니었다. 기득권 다툼, 정치권의 셈법 계산과 게으른 타협이었다. 그동안 대구의 GRDP(지역내총생산)는 만년 꼴찌를 맴돌았고, 경북의 군 단위 지자체들은 소멸위험지역 1순위가 됐다.
행정통합은 연애가 아니라 결혼이다. 그것도 생존을 위해 가문을 합치는 정략결혼에 가깝다. 상대방의 버릇을 하나하나 다 고쳐놓고, 혼수목록을 완벽하게 맞춘 뒤에 식장에 들어가려 한다면, 그 결혼은 기약할 수 없다. 더구나 이번 통합은 과거와 판이 다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 의사를 밝혔고, 대구·경북 단체장이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다. 이 타이밍을 놓치고 또다시 주판알만 팅긴다면 훗날 역사책은 우리 세대를 "가라앉는 배 위에서 선실 배정을 두고 싸우다 공멸한 어리석은 이들"로 기록할지 모른다.
물론 통합 대구경북특별시가 출범한다고 해서 천지개벽이 일어나진 않는다. 당장 서울이나 수도권을 이길 수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서울과 '맞장'을 떠볼 수 있는 체급은 갖추게 된다. 500만 인구의 거대 경제권, 대구의 의료·교육 인프라와 경북의 산업·관광 자원이 결합하면 수도권 일극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대항마가 될 수 있다.
이제 결단해야 한다. 정치권은 유불리를 따지는 계산기를 집어던지고 시·도민 역시 작은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말고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통합은 대구가 경북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대구의 도시 인프라와 경북의 광활한 영토·자원이 결합해 '포지티브 섬(Positive-sum)'을 만드는 과정이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내 이럴 줄 알았다'던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의 묘비명처럼, 우리도 후회만 남긴 채 간판을 내려야 할지 모른다.
박종진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