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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픽] 500년 해풍 견딘 울진 후정리 향나무

2026-02-05 16:25

천연기념물 제158호, 주민들 동제 지내며 마을 수호목 인식
해안 환경 적응한 독특한 수형…국가유산청 상시 관리 대상

경북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해변 근처 500년 향나무 전경.<원형래기자>

경북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해변 근처 500년 향나무 전경.<원형래기자>

1964년 천연기념물 제158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은 500년 향나무 모습.<원형래기자>

1964년 천연기념물 제158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은 500년 향나무 모습.<원형래기자>

겨울의 끝자락, 찬 바닷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던 날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골목으로 들어섰다. 담장 너머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함께 짭조름한 해풍이 골목을 채운다. 마을 끝 바다를 향해 고개를 튼 자리, 두 갈래로 갈라진 향나무 한 그루가 시야를 붙든다.


곧게 치솟은 줄기와 사선으로 바다 쪽으로 뻗은 또 다른 줄기. 오랜 세월을 견디며 스스로 균형을 찾아온 듯한 수형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수피 곳곳에는 바람과 염분, 햇살이 켜켜이 새긴 시간의 결이 드러난다.


이 나무는 수령 약 500년으로 추정되며, 1964년 천연기념물 제158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아왔다. 2008년에는 행정구역 명칭을 반영해 '울진 후정리 향나무'로 이름이 정비됐다. 이름 하나에도 마을의 뿌리와 정체성이 담긴 셈이다.


나무 아래에서 만난 주민 김진황(76)씨는 "어릴 때부터 늘 저 자리에 있었다. 태풍이 와도, 큰비가 와도 버텨냈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 같은 존재"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주민들에게 이 향나무는 단순한 보호수가 아니다. 풍어와 안녕을 비는 마음이 모였던 자리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계절의 변화를 먼저 알려주는 자연의 시계였다.


왕실 제례와 연결된 창덕궁 향나무나 선농단 향나무가 상징성과 의례의 공간에 뿌리내렸다면, 후정리 향나무는 생활의 자리에서 자라난 나무다. 해안의 강풍과 염분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형성된 독특한 수형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연이 만든 분재'라는 평가도 나온다.


학계에서는 이 나무를 울릉도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와 함께 동해안 향나무 식생 연구의 중요한 고리로 본다. 해안 생태환경에 적응한 향나무의 생육 형태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자료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해안 환경 변화로 노거수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후정리 향나무 역시 국가유산청 지침에 따라 상시 관리 대상에 포함돼 월 1회 이상 모니터링이 이뤄진다.


현장에서 만난 문화해설사는 "이 나무는 울진 해안 마을의 역사와 정서를 품은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심현용 학예사도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을 간직한 존재"라고 했다.


나무 아래 잠시 서 있으니 파도 소리와 솔잎 스치는 소리가 겹친다. 수백 년 같은 자리를 지키며 시대의 변화를 바라본 나무. 그 곁에는 주민들의 삶과 웃음, 근심과 희망이 켜켜이 쌓여 있다. 바다를 향해 몸을 틀고 선 향나무는 오늘도 말없이 자리를 지킨다. 걷다 보면 만나는 우리 동네 문화유산 후정리 향나무는 그렇게 마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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