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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양 외과의사가 바라본 일본 풍경·16]전통의 껍질 속에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내용을 가진 교토

2026-05-06 17:30


교토의 오비 장인, 야마구치 상. 여름 기모노이다. 허리에 두른 검은 끈이 오비다. 유명 잡지 모델로도 많이 나와서 사진기 앞에서는 자세가 나온다.<임재양 원장 제공>

교토의 오비 장인, 야마구치 상. 여름 기모노이다. 허리에 두른 검은 끈이 오비다. 유명 잡지 모델로도 많이 나와서 사진기 앞에서는 자세가 나온다.<임재양 원장 제공>

나는 교토를 좋아한다. 천년 고도(古都)라는 보수적인 껍질 속에, 일본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알맹이를 품고 있는 독특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교토에는 기모노와 오비(허리띠)로 대표되는 유구한 전통이 흐르지만, 동시에 교세라·닌텐도·시마즈 제작소처럼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첨단 기술이 공존한다. 겉으로는 고색창연한 사찰과 정적인 풍경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권위를 부정하고 변화를 추구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쳐난다.


15년 전 교토에서 야마구치 상을 만났다. 그는 대를 이어 오비를 만드는 집안의 10대 자손이며 일본 최고의 장인이다. '교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전통, 완고함, 기모노 같은 것들이다. 나 역시 그런 편견을 갖고 그를 만났으나 실상은 전혀 딴판이었다. 그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모든 면에서 파격이었고 흥미로웠다. 야마구치 상은 기모노와 오비를 파는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았다. 오비는 직조·염색·디자인이 결합된 '종합 예술'이다. 독특한 질감을 얻기 위해 에도 시대 부랑자의 옷을 구하기도 하고, 공작새 깃털이나 종이 같은 파격적인 소재로 실을 뽑고 옷을 짠다. 최상의 천연염색을 위해서 멀리 떨어진 아마미 섬의 진흙을 찾아간다. 전통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적인 감각을 찾기 위해 뱀이 많은 섬을 찾는 경험을 하거나, 교토 사람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경쟁 도시인 '오사카'의 마츠리에 직접 참여하면서 영감을 얻는다.


그의 예술성은 세계와도 연결돼 있다. 아르마니 회장이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직접 교토를 찾았고, 최근에는 프랑스 파리로 가서 에르메스와의 협업을 논의하기도 했다. NHK나 영화 다큐멘터리로 일본에 잘 알려져 있지만, 여든 나이에도 그는 "아직 만족스러운 오비를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오비 작업은 지휘자인 그와 직조·염색·디자인을 담당하는 팀원들의 공동 작업인데, 팀원들도 대부분 나이가 많다. 흔히 교토라면 전통적인 장인들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일본도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직업은 대부분 피한다. 야마구치 상의 자녀들은 아직 아버지 작품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만족할 만한 작품을 아직까지 못 만들었고 뒤를 이를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조급하다.


나는 처음에는 그가 그냥 독특한 성격을 가진 장인이고 오비 제작이 유별난 취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의 오비가 일본을 넘어서고 세계가 작품성을 인정하는 것은 '파격적인 생각'과 '끊임없는 변화'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일은 야마구치 상 개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교토의 상징적인 기업들 역시 기발한 발상과 혁신을 멈추지 않았기에 오늘날의 교토가 존재할 수 있었다.


교토의 시마즈 제작소 초기 사옥. 현재 기념관으로 사용된다. 초기 X- 레이 기계부터, 현재 최첨단의 진단 기계, 그리고 미래의 친환경 신기술에 이르는 다양한 전시물이 있다. 작지만 알찬 시마즈 제작소같이 기념관도 아주 짜임새 있게 꾸몄다.<임재양 원장 제공>

교토의 시마즈 제작소 초기 사옥. 현재 기념관으로 사용된다. 초기 X- 레이 기계부터, 현재 최첨단의 진단 기계, 그리고 미래의 친환경 신기술에 이르는 다양한 전시물이 있다. 작지만 알찬 시마즈 제작소같이 기념관도 아주 짜임새 있게 꾸몄다.<임재양 원장 제공>

검진 기계 전문 기업 '시마즈 제작소'는 1895년 퀴리 부인이 X선을 발견한 지 불과 11개월 만에 일본 최초의 X-레이 기기를 만들었다. 이후 회사는 변화를 거듭하면서 화학 분석 기계로서는 세계 최고였지만 일반인들은 무슨 회사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2002년 박사 학위도 없는 평사원(다나카 고이치)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유명 대학이 아니라 한 기업의 연구원이라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교세라, 무라타 제작소 등도 해당 분야에서 세계 초일류 기업이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교토식 경영'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하청을 받지 않는다'는 자부심이다. 독자적인 원천 기술을 개발해 대기업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매달리게 만든다. 둘째, 틈새시장에서의 압도적 1위다. 거대한 시장보다 자신들이 잘하는 정밀한 분야에 집중해 규모는 작지만 '부동의 1위'를 고수한다. 셋째, 당장의 실적보다 100년 뒤를 내다보는 '지속 가능성'이다. 오늘의 성과에 안주하는 순간이 끝이라고 믿는 '절박함'과 '혁신 의지'가 교토 천년의 전통을 지탱하는 진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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