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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인물열전] 대구·경북 유일 피겨국제심판 안나영 씨

2006-01-24

"피겨가 귀족적이란 관념 저변 확대 걸림돌이죠"
대구교대부초 1학년 첫발 30년 가까이 피겨와 함께
운동생리학 이학박사 취득 최고 심판 등급 'ISU' 도전

[우리시대 인물열전] 대구·경북 유일 피겨국제심판 안나영 씨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대구교대부속초등 1학년 때 처음 스케이트 끈을 조여맸으니, 30년 가까운 세월을 피겨와 함께 한 셈이다. 달라진 것은 정화여고 1학년 때까지는 선수였고, 지금은 선수들의 연기를 평가하는 심판이 된 것이다.

안나영씨(36).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대구·경북 유일의 피겨국제심판이다. 피겨스케이팅 저변이 열악한 국내에서는 각종 대회가 선수와 가족, 그리고 협회 관계자들만 관심을 갖는 '그들만의 잔치'이기 일쑤지만, 세계적으로는 상당히 대중성을 갖고 있고 인기도 웬만한 종목을 능가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는 것이 안씨의 솔직한 심정이다.

실제로, 오는 2월10일 화려한 막이 오르는 2006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입장권이 가장 많이 팔린 파트는 개회식도 폐회식도 아닌 피겨스케이팅으로 집계됐다. 세계피겨스케이팅의 양대 산맥인 미국과 유럽에서의 열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이웃 일본도 이젠 한 축을 형성할 정도로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대구는 오래전부터 유난히 빙상이 강한 지역이다. 지금은 선수와 시설의 서울 집중으로 전통을 유지하는 데 힘이 부치지만, 한때는 서울과 쌍벽을 이루며 우리나라 빙상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다. 특히 쇼트트랙의 경우 현재 국가대표의 30∼40%가 대구출신이라고 보면 된다.

안씨가 대구가톨릭대 사범대 체육교육과를 다닐 때 피겨인구는 위기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급격히 줄기 시작했고,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에는 피겨장래가 걱정될 만큼 위축돼 있었다. 원로경기인 등 피겨스케이팅계 인사들은 선수 수급문제와 함께 심판요원 부족의 심각성을 절감, 안씨에게 심판을 권유하기에 이른다.

경기인 출신으로 석사를 취득한 안씨는 원로심판들이 보기에 적격자였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심판의 길로 들어선 안씨는 제일 먼저 책임감이 앞섰다고 털어놨다. 선수들이 흘린 땀의 대가를 공정하게 매기고, 이를 토대로 피겨가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서 국제빙상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여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한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2급과 1급, 그리고 특급으로 심판을 분류하고 있다. 국제심판은 특급에 속하며, 현재 국내에는 안씨를 포함, 모두 7명의 피겨국제심판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이지희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 등 2명은 심판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올림픽 심판을 볼 수 있는 ISU(국제빙상연맹) 심판이다. 안씨는 피겨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인 동생 소영씨(35)에 이어, 1~2년 후쯤 ISU심판에 도전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2급과 1급 심판을 거친 안씨는 1997년 스위스에 있는 ISU로부터 국제심판 자격을 획득했다. 그리고 그해 독일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참가선수 35명의 연기를 채점하면서 국제심판이 된 것을 실감했다. 아니, 심판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끝없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절절히 체험한 대회였다고 고백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국내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유럽이나 미주선수들의 연기를 정확하게 평가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죠. 1위부터 35위까지를 가려내야 하는데 전부 잘 하는 것 같아 너무 어렵더라고요. 심판도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돌아오는 내내 긴장감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 한국체대에서 운동생리학과 운동면역학 전공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한 안씨는 첫 심판 때의 긴장감을 웬만하면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국제규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바뀐 규정을 국내 지도자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안씨는 2002년 독일을 비롯, 2003년 일본과 2004년 우크라이나, 그리고 지난해 불가리아에서 열린 세계주니어그랑프리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국제심판을 봤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나라 선수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국제심판도 하나 둘씩 늘면서 국제빙상계에서 한국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됐다고 들려준다.

특히 지난해 11월 불가리아대회에서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김연아(도장중)가 주니어그랑프리 왕중왕에 오른 것은 분명 '사건'이었고 한국피겨의 위상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러시아 등 세계적인 피겨강국의 코치진도 당시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다음 올림픽 금메달감"이라고 극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불가리아 현지에서 심판을 본 안씨는 김연아에 대해 "팔과 다리가 상대적으로 긴 체격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순발력과 점프력이 뛰어난 연습벌레이기 때문에 한국피겨계의 숙원을 푼 것"이라면서 "그러나 하루 10시간씩 진행되는 강도 높은 훈련을 불평없이 소화해내면서도 연기가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빙판에 앉아 엉엉 울면서 만족할 때까지 연습하는 독한 구석이 있다"고 소개했다.

안씨는 피겨스케이팅이 귀족적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으며 이런 시선이 저변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믿고 있다. 실내스케이트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만 할 수 있고, 수십만원대의 장비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런 이유가 피겨 꿈나무를 발굴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여자가 활동하기에 많은 제약이 따르고, 체육분야는 상대적으로 더 심한 편이라는 안씨. 하지만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이 아까워서라도 힘 닿는 데까지 계속할 생각이라는 안씨는 "국제심판이기 전에 한 남자(안씨의 남편은 대륜중에서 체육교사로 근무 중이다)의 아내이고 두 아이의 엄마인데, 내 일 한답시고 가정에 소홀했던 점은 평생을 두고 갚아야 할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우리시대 인물열전] 대구·경북 유일 피겨국제심판 안나영 씨
'한국피겨의 희망' 김연아와 함께 불가리아대회직후 소피아성당 광장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시대 인물열전] 대구·경북 유일 피겨국제심판 안나영 씨
지난해 11월 불가리아에서 열린 세계주니어그랑프리대회 개막전날 심판들과 공식만찬에 참석했다. 맨오른쪽 앉은 이가 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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