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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돌팔매

2010-08-25
[자유성] 돌팔매

예전에 돌팔매놀이란 게 있었다. 삼국시대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석전(石戰)으로 불렸다. 정월 대보름이나 단오에 남자들이 개천이나 강, 넓은 길을 사이에 두고 편을 갈라 돌을 던지며 싸우는 놀이였다. 원래는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성격에서 비롯됐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군사적 필요에 의해 국가적으로 장려됐다. 놀이라고는 하지만 돌팔매 싸움은 아주 치열했다. 머리가 깨지는 등의 부상자가 속출했고 더러 죽는 사람도 있었다.

고려시대로 넘어오면서 돌팔매를 전문으로 하는 투석부대가 생겨나 조선말기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조선시대때의 척석군(擲石軍)은 유사시 왜적 방비 임무를 맡았으나, 평화시에는 세종 등 국왕들이 이들의 돌팔매 놀이를 관람하며 유희를 즐기기도 했다. 돌팔매 부대의 전투력은 생각보다 강했던지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웠다. 임진왜란 때 안동 등지의 석전군을 모집해 왜구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고, 특히 부녀자들이 나른 돌로 투석전을 펼쳐 승리했던 행주산성 전투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사건때도 평양 사람들은 돌팔매 전투를 벌였다. 대동강을 타고 평양 인근까지 나타난 이 배가 대포와 총으로 공격하자 주민들은 강변에서 돌을 던져 저항했다. 이 때 생겨난 '평양 돌팔매 들어가듯'이란 속담은 사정없이 들이닥치거나 겨냥한 것이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돌팔매가 우리에게 호국과 유희를 위한 민속놀이인 것과는 달리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죄인을 처벌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며칠전 아프가니스탄에서 간통죄를 범한 열아홉 처녀와 유부남이 투석사형(投石死刑)에 처해져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사랑한다는 남녀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탈레반 대원과 주민들이 던진 돌에 맞아 숨졌다. 참으로 잔혹한 관습과 문화다. 예수도 일갈했듯 돌을 던진 사람들 중에 진정 죄없는 자가 몇이나 될까. 우리는 말이나 행동으로 하는 돌팔매질도 삼갈 일이다. 남에게 준 상처는 언젠가 자신에게 되돌아 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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