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TV

  • 대구 두류공원서 제18회 아줌마 대축제… 도농상생 한마당
  • 가을빛 물든 대구수목원, 붉게 타오르는 꽃무릇 군락

[2011 스토리텔링 대가야의 魂 가얏고 .4] 나는 가얏고 지키는데 생을 걸리라

2011-11-04

보희란 계집이 기밀을 빼내다 들켜 난리가 났네…어허 말세일세

[2011 스토리텔링 대가야의 魂 가얏고 .4] 나는 가얏고 지키는데 생을 걸리라
고령 우륵박물관에 있는 우륵기념탑. 12현의 가야금이 하늘로 날아오르듯 우뚝 솟아 있다. 가실왕은 음악을 통해 천하를 통일하고, 부흥하며, 하나로 화합되길 원했다. 우륵이 제작한 가야금은 그런 대가야의 얼과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우륵은 그 꿈에 자신의 목숨을 걸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1

우륵은 가실왕이 특별하게 하사한, 금칠이 잘 된 가얏고를 무릎에 얹고 줄을 쓰다듬는다.

“이문아, 이 가얏고는 이제 나의 전부가 되었다.”

“저의 전부이기도 합니다. 스승님.”

“그래, 우리의 전부이니라. 왕께서 그걸 인정하셨다. 왕께서는 이 가얏고를 통해 천하를 통일하고, 부흥하며, 하나로 화합되길 원하신다. 그 중한 일이 나의 일이 되었느니라. 이제 우리는 대가야의 소리로 통일되리라.”

“충분히 그럴 만한 악기입니다.”

“가야제국의 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다. 얼마나 장한 악기냐?”

“그렇습니다. 우리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지요. 스승님은 이 악기와 더불어 길이 이름이 기억될 것입니다.”

우륵은 ‘상가라도’를 연주한다. 대가야의 꿈이 무르익은 농현으로 다시 한 번 질펀하게 펼쳐진다. 가야산의 정기를 고스란히 받은 정현모주로부터 피워온 대가야의 꿈은 큰 강을 따라 내려갔고, 그 물결의 힘은 사방으로 뻗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대가야는 큰 강 양안의 제국들은 물론, 서쪽으로도 한껏 영향력을 발휘하여 대제국의 꿈을 실현해 왔다. 비록 지금은 그 힘이 약해졌으나, 왕의 개혁이 보장되는 한 다시 한번 대가야는 넓은 강토를 그 품에 안으리라. 그 중심에서 울려 퍼지는 가얏고 소리가 그 품을 그윽하게 할 것이다. 우륵은 그 꿈에 자신의 목숨을 걸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2

(대화1)

갑 : 어허, 왕이 가얏고에 미친 게 아닌가?

을 : 가야 각국의 악사들을 불러 가얏고를 교육하고 연주할 집을 크게 짓는다니,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한담? 국고가 꽉 찼을 때도 하기 힘들었던 생각을, 가야 각국의 봉물이 현저히 줄어들어 국고가 비어가는 지금에 어찌 그런 사업을 벌여?

갑 : 음악으로 가야제국의 마음을 통합한다고? 어림없는 꿈이야.

을 : 그보다는 빨리 백제와 동맹을 강화하여 자꾸 우리를 넘보는 신라의 속셈을 잠재우는 게 급선무인데, 악기 타령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은가?

갑 : 우륵이 너무 설쳐대는군. 왕의 힘을 믿고 저러다 큰 일 나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

을 : 쉿! 우륵이 신라와의 동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니 말 조심하게.

갑 : 그렇잖아도 그의 친구가 신라의 첩자라네.

을 : 그게 무슨 소린가?

갑 : 그 판수라는 작자 있지? 포구에서 연주하는 그 젓대쟁이….

을 : 그 친구가 첩자라고?

갑 : 그렇다네. 그 친구가 제자를, 우륵 옆에서 가얏고를 연주하던 그 계집 말일세, 궁성에 잠입시켜서 기밀을 빼내다 들켜 난리가 났네.

을 : 그래, 잡혔는가?

갑 : 판수는 달아나고, 그 계집은 감옥에 갇혔다네.

갑 : 어허! 말세일세.

을 : 그래봤자 왕이나 우륵이 신라편이니 흐지부지되겠지.

갑 : 어허, 말세일세.


#3

(대화2)

왕 : 음악으로 제국의 마음결을 가지런히 하려는 나의 뜻이 지금 꼭 필요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왜 수긍하지 못하고, 말들이 많은지…. 사람들의 마음이 왜 이리 헝클어졌나?

우륵 : 전하, 판수의 일은 정말 유감이옵니다. 혹여 전하께서 하시는 일에 걸림돌이 될까 민망하기 짝이 없사옵니다.

왕 : 그럴 것 없네. 첩자는 지금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네. 가야 제국들이 백제로 기울어지면서 신라와 백제의 첩자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네. 판수도 그 중 한 사람일 뿐이지. 그가 유출한 정보라는 것도 별 게 아니고. 다만 백제와 신라에서 그런 첩보와 정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걸 경계해야 할 뿐. 짐이 크게 마음쓰고 있지 않으니, 자넨 그 일을 잊고 가얏고를 잘 챙기시게. 새 곡들을 널리 펴고, 악기를 고루 전파시키는 일이 자네의 일일세.

우륵 : 잘 알고 있습니다. 가얏고는 제 필생의 반려입니다. 이 악기를 지키는 게 대가야의 정신을 지키고 간수하는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왕 : 당연하지. 자네의 일은 나의 개혁추진의 기반임을 명심하게.

우륵 : 잘 알겠습니다.

왕 : 앞으로 많은 장애가 있을 것이네. 그걸 이겨내야 하네.

우륵 : 네, 전하. 하옵고, 보희의 일은 어찌 처리하시렵니까?

왕 : 보희?

우륵 : 불쌍한 아이입니다. 재주가 아주 놀라워 앞으로 가얏고 음악을 지켜낼 훌륭한 재목감인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판수의 제자이긴 하지만, 아마도 스승이 시키는 일이라 그냥 생각 없이 한 것 같습니다. 선처가 가능하겠는지요?

왕 : 그래…. 자네가 알아서 하게.


#4

“보희가 탈출했다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간수들이 잠든 사이에 지붕을 뚫고 사라져버렸어.”

“약을 타서 간수들을 먹인 모양이네.”

“한밤 중에 약주를 들인 사람이 판수패라던데. 잘 봐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걸 들이민 게야. 간수들이 그걸 한 잔씩 나누어 마신 다음 잠들어버렸어.”

그런 말들이 무성하다.

우륵은 아침에 궁성에 들렀다가 바로 공방으로 돌아온다. 이문은 그를 맞이하면서 눈치를 살핀다.

“공기가 어떻습니까?”

“심각하네. 한 차례 책임 추궁이 일 듯하네. 포구에 군사들이 급파됐다는데, 모두 도주해버렸다더군.”

“어쨌든 잘 된 일입니다.”

“입 다물게. 자네가 도운 일이라는 걸 아무도 모를 게야.”

“포구 출입은 당분간 삼가십시오. 혹, 판수의 끄나풀이 접근해올지도 모르니까.”

“알겠네. 조심하세.”

며칠 후 우륵이 돌아오는 길에 한 길손이 그를 스치면서 지나가는 말로 넌지시 중얼댔다.

“알터 위 성 아래 고개에서, 해질녘에 판수님이 기다립니다.”

우륵이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수염이 무성해서 얼굴이 어둡다. 우륵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휑하니 들길로 해서 내쪽으로 가버린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 일찍 저녁을 먹고, 간단하게 먹을 것과 술 한 병을 싸서 허리에 찬 다음에 우륵은 서둘러 길을 나선다. 가얏고를 어깨에 멨다. 때로 무작정 주변의 산천을 돌아다니던 차림이다. 섶다리로 강을 건너 모래밭을 따라 강 하류로 내려가다가 산성 쪽으로 향한다. 알터를 지나 좁은 산길로 해서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침소리가 들린다. 길을 벗어나 바위 뒤로 돌아가니 판수가 서 있다. 판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좀 더 깊은 골짜기로 그를 안내한다. 골짜기 바위 아래 둘은 앉는다.

“저녁이나 들게.”

우륵은 싸온 주먹밥과 간단한 반찬을 펴놓는다. 술부터 한 잔 권한다. 판수는 얼른 한 잔 하고는 우륵에게 표주박 잔을 내민다.

“보희는?”

“큰 강 건너 있네. 고맙네. 괜찮은가?”

“괜찮을 리 있나, 이 사람아. 사람들이 날 의심하는 듯해.”

“꼬리가 잡히지 않게 조심하겠네. 이거, 보희가 전해주라 했네. 보희에겐 베낀 게 한 권 있네.”

악보를 그려놓은 책이다. 우륵이 작곡한 열 두 곡과 이문이 작곡한 세 곡을 그려놓은 것인데, 보희가 늘 챙기면서 베끼고 있었다. 아주 귀한 것이다.

“왕이 추진하는 개혁의 반대세력이 만만찮을 텐데. 자네가 걱정이 되는구먼.”

“나야, 가얏고를 지키면서 살아야지. 음악이나 하는 악사에게 무슨 큰 일이 있겠나?”

“아니야, 틀림없이 자넬 해하려는 자들이 나타날 걸세. 자넨 친신라계가 아닌가. 궁중에는 친백제 세력들이 득실거리네.”

“그래, 왕만 강건하면 잘 풀릴 거야. 나는 가얏고를 지키는 데 온 힘을 다할 걸세.”

“잘 해보게. 가보겠네. 서라벌로 갈 거야. 밥은 가면서 먹겠네.”

판수는 일어선다. 우륵은 그에게 가얏고를 내민다.

“보희에게 전해주게.”

판수는 희미하게 웃는다. 그리고는 숲으로 해서 산 아래로 사라진다. 우륵은 어둠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산길로 나와 알터로 내려온다. 달이 없어 사위가 어둡다. 글=이하석

<시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공동 기획 <고령군>

[2011 스토리텔링 대가야의 魂 가얏고 .4] 나는 가얏고 지키는데 생을 걸리라
우륵박물관에 있는 금장지 표지석.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연주하던 자리에 세워졌다. <영남일보DB>
기자 이미지

박준상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