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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물벼락과 바나나

2013-01-26

바나나에 눈멀어 무턱대고 장대 오르는 원숭이는 물정 모르는 철부지인가,
이유 없이 바나나 포기하는 세상 바꾸려는 용감한 동물인가

[경제칼럼] 물벼락과 바나나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의 강연에서 들은 얘기다. 과학자들이 동물원의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장대 끝에 한 다발의 바나나를 걸어놓고, 거기에 원숭이가 장대를 타고 오르면 물벼락이 쏟아지게 장치를 해놨단다. 아무것도 모르는 원숭이들은 당연히 바나나를 따 먹으러 장대를 오르다가 단체로 물벼락을 맞는다.

그 다음에는 그 원숭이 집단 중에 한 놈을 빼고, 그 자리에 신참을 새로 집어넣는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은 바나나를 따 먹으러 장대에 오르려 한다. 그러면 나머지 원숭이들이 달려들어 거의 폭행 수준으로 그 녀석의 행동을 과격하게 뜯어말린다고 한다. 물론 물벼락을 맞았던 무서운 기억 때문이다.

이 장면은 멤버를 교체할 때마다 반복된다. 그렇게 들어온 신참들은 저 자신은 물벼락을 맞아본 경험이 없으면서도 새로운 신참이 들어오면 자기들도 만류하는 그 행동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런 식으로 계속 멤버를 교체해 결국 원숭이 집단에서 물벼락을 맞아본 놈들은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결국 집단 전체가 물벼락을 맞아보지 못한 신참들로 찼을 때도, 장대에 오르는 것을 말리는 행위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실험의 어느 순간엔가 과학자들이 물벼락 장치를 치워버렸다는 것. 결국 원숭이들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그 맛있는 바나나를 보고도 따 먹지 못하는 바보짓을 하게 되는 셈이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에 장대에 오르는 것을 만류하는 것은 분명히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행동이 반복되다 보면 나중엔 만류하는 이유 자체를 잊어버리고, 만류 자체가 자기목적이 되어 만류하던 이유가 사라진 후에도 손해 보는 행동을 습관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처음에 신참을 만류하던 그 현명한 원숭이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눈에 바나나에 눈이 멀어 무턱대고 장대에 오르는 신참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철부지일 뿐이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아무 이유 없이 바나나를 포기하는 멍청한, 세상을 바꾸려는 용감한 신참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눈에는 자칭 ‘현명한’ 원숭이들이 세상이 바뀐 것을 모르는 멍청한 원숭이들일 뿐이다. 한쪽은 물벼락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다른 한쪽은 바나나의 유혹에 사로잡혀 있다.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이들에게는 물벼락의 ‘공포’를 계속 유지시켜줄 ‘무지’가 필요하다. 그에 맞서 기존의 질서를 바꾸려는 이들은 자신들이 변화된 상황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바꾸려는 ‘용기’를 갖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리하여 ‘좌빨’이라는 공포의 수사학과 ‘수꼴’이라는 경멸의 수사학이 충돌을 일으킨다.

이게 대한민국이라는 동물원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물벼락을 피하면서도 바나나를 따 먹는 것이리라.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정재승 박사는 이 딜레마의 대안으로 ‘위험의 정도에 대한 합리적 산정’과 ‘최소한의 실험을 용인하는 분위기’를 제시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 정도의 여유라도 갖추고 있을까. 이번 대선에서 원숭이 다수는 물벼락을 안 맞는 쪽을 선택했다. 나머지 원숭이들은 멀쩡한 바나나를 눈앞에 두고도 따 먹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한다. 우리는 언제 다른 동물원처럼 장대의 바나나를 맘껏 따 먹게 되나 한탄하며, 이참에 다른 동물원으로 이민을 갔으면 좋겠다고 푸념한다. 물론 그들을 받아줄 동물원은 없다. 승리한 원숭이들에게는 물벼락만 안 맞으면 이 동물원이 그럭저럭 살 만한 곳이다. 그 동물원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위로는 휴전선으로 막혀 있어 섬이나 다름없다. 다른 동물원의 복지가 어떤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과거’에 비해선 사료가 늘었고, 사료도 못 먹는 ‘북한’의 원숭이들보다는 낫다고 느끼기로 한 것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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