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머머리섬’ 열려…올해로 8회째 국내 대표 주민자치형 골목축제로 자리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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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3동 아이들은 어린이날 먼데로 구경갈 필요가 없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인형마임축제’가 자기 동네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아이들 뒤에서 물끄러미 축제를 즐기고 있는 동네 할아버지 표정이 이채롭다. <머머리섬 제공> |
등잔 밑이 어두웠다.
대구시 중구 삼덕3가 골목에서 8년째 ‘삼덕동인형마임축제(이하 인형축제)’인 ‘머머리섬’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왜 머머리섬일까. 경기도 김포시의 최북단 보구곳리에 가 보면 강 가운데 ‘유도(留島)’라는 큰 섬이 하나 앉아 있다. 그 옛 이름이 ‘머머리섬’이다. 그 너머가 바로 북한인데, 전설에 의하면 그 옛날 섬 하나가 홍수에 떠밀려 임진강을 따라 떠내려오다가 여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세상의 큰 흐름에 밀려 가까스로 삶의 자리를 지키는 곳’을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1998년 전국에서 맨 처음 담장허물기운동이 일어난 동네라서 그런지 기획자와 동네사람은 일심동체가 되어 이 축제를 한국 축제 중 가장 성공한 주민자치형 골목축제로 성공시켰다. 숱한 이들이 벤치마킹을 하고 있다. 마임이스트 조성진씨 등 숱한 공로자가 있는데 특히 삼덕동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시각디자이너 겸 벽화 전문가인 김정희씨가 주목을 받는다. 그녀는 인형축제의 영원한 스태프이자 아이들의 ‘이모’였다.
올 주제는‘백구야 놀자’
동네 아이들 중심으로
인형 직접 만들어 공연
아트바이크·도예 체험
반려동물 사진전시회
종이꽃밭 등 행사 다양
주민 등 동네 전체의
문화·예술적 변화 실감
◆담장허물기로 아이들 닫힌 맘을 열다
담장허물기는 아이들에게 상당한 ‘자극제’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좀 영악한 구석이 있어 무슨 일에 확 빨려들지 않는다. 단지 자기 동네에 재밌는 일이 생기는 정도로 알고 구경꾼으로 물러나 있었다. 1998년 10월 김씨는 그 동네에 자신의 작업실이 있었다. 갓 대구가톨릭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사고 칠 거리’를 찾고 있었다. 일단 동네를 문화·예술적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었다. 일단 아이들을 위한 그림대회를 기획한다. 학부모를 만나 설득해 20여명 아이의 그림을 전시했다. 당시 근처에는 삼덕·동인·동덕초등이 포진해 있었다. 그림은 축제 사무실격인 현재 삼덕동 지역아동센터 마당에서 열렸다.
처음부터 축제형식은 아니었다.
마을 인형극으로 워밍업한다. 1회 인형극은 98년 12월23일 마당극 형식으로 열렸는데 지역의 극단 인형엄마, 반달인형극회(회장 박민량) 등이 가세해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두 번 공연했다. 그녀와 아이는 한 맘이 된다. 홍보도 필요 없었다. 입소문이면 충분했다. 마임이스트 조성진도 가세한다. 인형축제가 성공하려면 아이가 주인공이 되고, 그 아이가 자기 인형극을 가져야 된다고 믿는다.
동네아이들을 축으로 한 인형극단 ‘초록별아이들’이 그렇게 해서 태어난다. 연출은 조성진, 그녀는 아이들을 불러오고, 간식도 챙겨주고,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도맡는다. 노력한 덕분에 2006년 제1회 삼덕동인형마임축제가 팡파르를 울린다.
◆국제대회로 발돋움한 인형축제
운영비 때문에 공모사업에 눈을 돌린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공모신청을 했다. 채택이 된다. 2천만원이 생긴다. 일본, 중국 등 인형극에 능한 국제팀을 모셔 온다. 동민들도 놀란다. 자기 골목에 유명 외국 인형극단이 온다는 소식에 모두 들뜨기 시작한다. 메인 무대는 삼덕초등 후문 뒤뜰이었다. 또한 옛 대구교육감 관사에 들어선 마고재, 주민자치센터도 거점이 된다.
사흘간 아이들은 행복했다. 거무튀튀한 골목에 ‘행복한 햇살’이 스며든다. 메인행사는 놀이동산 특장차 같은 퍼레이드 차량에 아이들을 태우고 골목을 도는 건데 아이와 학부모 등 320여명이 참석한다. 인형도 동네에서 직접 만든다.
주민들은 마을에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첫해에 2천여명, 나중에는 5천여명으로 늘어났다. 대성공이었다. 화장실이 매우 부족했다. 첫해에는 남의 집 화장실로 마구 직행하는 이들도 생겼다. 화장실 대란이 일어난다. 주민이 자기 화장실을 개방한다. 동네 아이들이 화장실 간판도 직접 만든다. ‘함께함’이 소중해서 어르신과 ‘품앗이 밥상’을 차린다.
◆4회 때부터 주민들이 비평가로 변신
4회부터 주민들의 눈과 안목이 높아진다. 축제를 평가하는 눈이 생긴 것이다. 살사댄스팀을 보곤 ‘저런 팀은 우리 동네하고는 안 맞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와 같은 작품을 갖고 온 극단도 꼬집었다. 아이들도 눈이 높아진다. 초반에는 인형들이 투박해도 보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섬세한 인형이라야 반응한다.
쌍방향축제라서 항상 아이가 인형제작에 참여한다. 단원 아이는 무대에 서기까지 모두 10번 연습을 한다. 핀 마이크도 사용한다. 지역 방송가에선 어린이날 현장중계도 했다. 주민은 일상적이고 소비적인 데서 문화적으로 변해간다.
2010년에서는 생텍쥐페리의 별 탄생 110주년 기념행사를 했다. 주민 모두 어린왕자를 간접경험하도록 했다. 2011년에는 ‘삽사리는 달을 짖고’라는 주제로 대구 경북대 삽살개 보존회의 도움을 받아서 마을에서 실제 개를 주인공으로 퍼레이드를 벌였다.
2012년 즈음엔 동네에 아파트가 생긴다. 새로운 거주공간의 등장이었다. 이를 고민해 봐야 했다. 그래서 그해 주제는 ‘헌집 새집 두꺼비집’으로 정하고 집과 마을과 아파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2013년 인형축제 미리보기
2013년 주제는 ‘백구야 놀자’.
애완동물 1천만 시대가 개막됐다. 올해부터 애완동물등록제가 실시된다. 애완동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계모색에 집중한다. 올해는 지난 7년과 달리 공모사업에 낙방돼 급전이 필요했다. 긴급회의가 열린다. 보다 못한 주민센터가 주도적으로 도운 결과, 행복마을 공모사업에 채택돼 400만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젠 자원봉사시스템이 잘 돼 있어 60여명이 돕는다.
오는 4일 오후 6시 초록별아이들의 개막공연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오후 7시30분부터는 마임씨어터 빈탕노리가 ‘이 도끼가 네 도끼냐’가 오른다. 5일 낮 12시에는 아름인형극단의 ‘도와줘요 빨래할머니’, 오후 2시와 4시에는 청소년음악그룹 1 플러스 1 플러스 1의 작은 콘서트, 오후 2시30분과 4시30분에는 송다민의 스토리텔링마술 ‘꽃과 나비 그리고 기억…’, 오후 5시에는 초록별아이들이 개막식 작품을 갖고 폐막공연도 보여준다.
이 밖에 아트바이크도 탈 수 있다. 페이스페인팅은 지역아동센터 마당에서 열린다. 대구교대 미술영재원 6학년 봉사동아리 ‘리틀다빈치’도 참여한다. 미술관 맞은편에서는 인형포장마차, 미술관 마당에서는 도예체험, 미술관 뒤에서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진전시회, 마고재에서는 ‘종이꽃밭만들기’를 볼 수 있다. 어린이날 어디 갈까 고민할 필요 없이 삼덕동으로 가 보라.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 삼덕3가 주민자치위원회·대구공간문화센터 공동주최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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