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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81] 타미 힐피거 (Tommy Hilfiger)

2013-08-03
[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81] 타미 힐피거 (Tommy Hilfiger)

대표적인 아메리칸 캐주얼 브랜드 타미 힐피거(Tommy Hilfiger). 1985년 최초 론칭 라인인 타미 힐피거 맨즈웨어를 시작으로 우먼스, 데님, 키즈라인까지 패밀리형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프레피 스타일부터 최신의 비즈니스 스타일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또 타미 힐피거 로고의 레드, 화이트, 블루 컬러는 아메리칸 스피릿(American Spirit)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디자이너이자 브랜드의 창업자인 타미 힐피거는 미국의 엘미라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1969년 현금 150달러와 청바지 스무 벌을 가지고 소매업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그는 청바지와 소비자가 원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People’s Place’라는 본인 소유의 첫 번째 매장을 열고, 독학으로 패션을 공부하며 자신의 고객들이 원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 옷들을 본격적으로 디자인하기 시작한다.

79년 그는 큰 결심을 하고 뉴욕으로 간다.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패션의 도시로 옮긴 것이다. 그리고 84년 첫 컬렉션을 발표함과 동시에 남성 패션계의 새로운 리더가 타미 힐피거임을 선언하는 대담한 광고를 선보이게 된다.

타미 힐피거는 상류층을 목표로 시작된 소규모 브랜드였으나 80년대 말 매출액이 연간 2천500만달러에 이르렀고, 1990년대에는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다. 제품을 보다 다양하게 구성하고 유통망을 확장한 후 타미 힐피거는 그의 동업자인 실라스 초우, 로렌스 스트로, 조엘 호로위츠와 92년 회사를 상장한 데 이어 98년 5월에는 이미 성장하고 있던 청바지 라인, 여성복 그리고 캐나다 라이선스 비즈니스를 완전히 인수하게 된다.

타미 힐피거의 성공 요인은 진보적인 패션 철학과 공격적이면서 대담한 마케팅 전략에 있었다. 무명시절에 300만달러를 들여 광고를 시작했는데 이 광고에서 “미국시장에는 네 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랄프로렌, 페리 엘리스, 캘빈 클라인 그리고 타미 힐피거가 있다”라는 표현을 썼을 만큼 대담하고 실험적이었다. 또한 연예인을 활용해 적절한 홍보 마케팅을 펼치며 브랜드의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여갔다. MTV 뮤직비디오 영상에 브랜드가 나오도록 지원하거나 콘서트 투어를 하는 가수들의 의상을 협찬하기도 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미국과 타미 힐피거를 동일시한 관계 마케팅 전략이었다. 타미 힐피거는 로고 자체에 미국 국기의 색상을 활용하였고, 남성 향수의 광고 카피는 ‘진정한 미국의 향기’로 표현된다. 대담하고 모험적인 로고 마케팅,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편안한 캐주얼이 전 세계 패션계에 확고한 정체성을 심고 있다. 타미 힐피거는 자신의 전 컬렉션에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자 했다. 남성, 여성, 아동 그리고 홈 컬렉션까지, 클래식부터 캐주얼을 아우르는 디자인을 만들어 소개했다. 오늘날 타미 힐피거는 옷을 넘어서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로 성장함에 이어 또 한 번의 혁신을 계획하고 있다.

정보와 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인 ‘tommy.com’은 타미 힐피거 브랜드를 온라인에서 쉽고 빠르게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대중문화, 패션, 음악, 스포츠 등 그의 고객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콘텐츠를 제공한다. 옷에서 패션으로, 패션에서 라이프스타일로, 라이프를 위한 콘텐츠까지 타미 힐피거에서 고객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도록 단계적인 발전과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프리메지스·밸런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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