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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옥은 ‘ㄱ’ ‘ㄷ’자 형태였지만 대구는 ‘一’자형이 대세

2013-11-08

■ 대구한옥의 특징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중구에는 조선의 한옥에서 1960년대 집장사 위한 한옥까지 다양
달구벌대로 남쪽은 서성로보다 수는 많지만 질이 떨어지는 단점

서울 한옥은 ‘ㄱ’ ‘ㄷ’자 형태였지만 대구는 ‘一’자형이 대세
신명고 맞은편 옛 구암서원.
서울 한옥은 ‘ㄱ’ ‘ㄷ’자 형태였지만 대구는 ‘一’자형이 대세
중구 인교동 164의 8 이건희 삼성 회장 생가.
서울 한옥은 ‘ㄱ’ ‘ㄷ’자 형태였지만 대구는 ‘一’자형이 대세
중구 남산2동 상덕사 문우관.
서울 한옥은 ‘ㄱ’ ‘ㄷ’자 형태였지만 대구는 ‘一’자형이 대세
중구 종로에 위치한 대통조계찜 건물. 일제강점기 한옥으로 2층이다.
서울 한옥은 ‘ㄱ’ ‘ㄷ’자 형태였지만 대구는 ‘一’자형이 대세
진골목에 있는 약전식당 한옥. 일제강점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한옥은 ‘ㄱ’ ‘ㄷ’자 형태였지만 대구는 ‘一’자형이 대세
189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진골목식당 한옥. 코오롱 창업주 이원만 회장이 한때 거주했다.
서울 한옥은 ‘ㄱ’ ‘ㄷ’자 형태였지만 대구는 ‘一’자형이 대세
<자문>


서울 한옥은 ‘ㄱ’ ‘ㄷ’자 형태였지만 대구는 ‘一’자형이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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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도심에도 99칸 한옥이 있었다.

중구 동산동 대구메디센터(옛 엘디스 리젠트호텔)와 동산맨션 자리에는 대한광복단원에 의해 격살된 친일부호 장승원의 한옥이 대구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당시 한강이남 최고의 부호였다.

그 밖에도 옛 대구읍성을 중심으로 종로, 동·서·남·북성로 일대와 계산동·인교동·대신동·달성동 등 대구도심에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했다.

특히 진골목 주변에는 서병국, 서병오, 서병기, 서병직, 서창규 등 달성서씨 부호들이 많이 거주한 탓에 기와집과 양옥이 많았다. 현재 이곳의 한옥은 대부분 사라졌으나 일부 남아있는 한옥은 현재 식당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구읍성이 파괴된 이후 옛 도심은 근대건축물로 대체됐다. 1930년대를 전후로 기와집이 많이 건축됐으나 그때까지도 시가지 주변은 초가가 대세였다.

대구지역 한옥은 서울·경기지역의 ‘ㄱ’자나 ‘ㄷ’자 한옥과 달리 인근 성주, 경산, 밀양, 합천과 같이 남방형 ‘一’자형 한옥이 많다. 이는 날씨 등 자연환경과 관련이 있다.

권상구 대구시 중구 도시만들기 지원센터 사무국장은 “대구는 한옥이 많은 전통도시이면서도 적산가옥이 있는 근대도시의 이중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권 국장은 지난해 대구도심 건축자산의 보전·재생을 위한 실태조사 및 기록화작업을 진행하면서 근대건축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마쳤다.

그는 현재 대구시 중구에 산재한 한옥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 한옥의 소유주가 누구이며, 용도는 무엇이며, 면적은 얼마나 되는지, 또 어떤 구조로 지어졌는지 일일이 탐방 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중구가 어떤 방식으로 한옥을 보존할지 정책조언을 할 예정이다.

권 국장은 “대구 중구의 한옥은 10년 단위로 뚜렷한 형식을 갖고 있다”면서 “옛 지방귀족이 살던 1890년대 이전 한옥에서부터 1960년대 집장사를 목적으로 한 한옥까지 시대별 , 계층별로 한옥이 다양하게 포진돼 있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권 국장은 또 60년대 이후 개량한옥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그 전에 지은 것도 도시생활에 맞게 바닥 터를 돋우고 마루를 넓히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했다.

개방적인 게 특징이었던 한옥은 독립적 생활형으로 변모했다.

조재모 경북대 건축토목공학부 교수는 “중구에만도 약 5천채의 목조건축물이 남아있으며, 한옥으로 확인된 건물은 약 1천700채”라고 했다.

이는 서울 종로구의 서촌(900채)과 북촌(660채), 전주의 한옥마을(700채)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대구의 한옥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조 교수는 “달구벌대로를 중심으로 남쪽 남산동, 봉산동, 대봉동 등지는 북쪽인 서성로 일대보다 한옥 수는 많지만 질은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보다 장점도 있다. 땅값과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 서울처럼 지나치게 상업화되지 않아 공공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조 교수는 “서울의 경우 강남 투기꾼이 몰려들어 북촌과 서촌의 땅을 마구 사들이는 바람에 동네커뮤니티가 완전히 깨져버린 단점이 있다”고 했다.

한옥은 아파트에 비해 습해·충해·단열·방수에 취약하다. 또한 평당 건축비가 비싸고, 기밀성에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한옥건축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런 단점은 극복되고 있다. 정부도 한옥건축에 대한 법적 기준을 완화하고 한옥 철거신고제를 추진하는 등 제도적으로 한옥을 보전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조 교수는 하지만 관광을 목적으로 한옥을 보존하는 정책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주거의 종 다양성’이란 말로 정부의 주택정책에 쓴소리를 했다.

“20대엔 스포츠카를 타고 싶고 30대엔 RV차량을 타고 싶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파트건축에 지나친 혜택을 줬어요. 그러다보니 기와집 같은 전통주택이 설 땅을 잃어버렸죠. 아파트라는 맹수가 주거생태계를 완전히 잡아먹어버린 거죠. 지금은 누구나 아파트에 살고 싶은 게 문제이지만 몇십 년만 지나면 어느 누구도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문제가 될 시대가 옵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서울 한옥은 ‘ㄱ’ ‘ㄷ’자 형태였지만 대구는 ‘一’자형이 대세
중구 계산동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 고택과 서예가 회산 박기돈 고택.
서울 한옥은 ‘ㄱ’ ‘ㄷ’자 형태였지만 대구는 ‘一’자형이 대세
서성로 소남 이일우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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