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별、가난 그리고 恨…님이 넘던 그 고개를 기억하시나요
![]() |
2000년 개통된 팔공로 공산터널 때문에 자동차도로에서 ‘걷기 길’로 변한 내동재. 2010년부터 매년 영남일보가 주최하는 팔공산달빛걷기대회의 주요 구간이기도 하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 |
대구의 진산이었던 연귀산과 남산으로 불렸던 아미산. 반월당과 중앙대로를 중심으로 오른쪽 가운데는 아미산, 왼쪽 가운데는 연귀산이었다. 두 산은 연결돼 있었으나 도로가 나고,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서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산이 많으면 고개도 많은 법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산과 고개가 많은 나라도 드물다. 특히 함경도와 강원도, 경북지역은 바람과 구름도 쉬어 가는, 높고 험준한 고개가 많다.
고개는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산등성이의 낮은 부분이다. 옛날에는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주요 교통로였지만, 요즘과 같은 속도의 시대엔 터널이나 철도, 고속도로에 밀려 등산로나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다. 터널이 없는 경우에도 대부분 아스팔트로 포장돼 있어 힘들이지 않고 고개를 오르내릴 수 있다. 도심에 있는 작은 산과 고개는 깎여나가거나 아예 자취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개의 이름은 대다수 남아있다.
고개는 그 지역의 이야깃거리를 감싸안고 있다. 이야깃거리는 구비문학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자연부락마다 유래에 따라 고유의 명칭이 있듯 고개 역시 예외는 아니다.
고개는 민족의 삶과 애환, 그리고 인생의 고난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게 아리랑고개요, 보릿고개다. 굽이굽이 고갯길에는 눈물과 이별, 가난과 한이 녹아있다. 고개는 민요와 대중가요, 동요 속에도 종종 등장한다. ‘추풍령’ ‘바위고개’ ‘단장의 미아리고개’ ‘비 내리는 고모령’ ‘울고 넘는 박달재’ ‘꼬부랑 할머니’ ‘산토끼’ 등 고개를 소재로 한 노래가 수없이 많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서 고개를 가리키는 이름도 다양하다. ~령(嶺), ~현(峴), ~치(峙), ~점(岾) 등의 한자는 물론 ~고개, ~재, ~목, ~티 같은 우리말이 있다. 고개의 규모나 모양, 생활권에 따라 ~령, ~치, ~현, ~티 뒤에 다시 고개나 재를 붙이기도 한다.
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재는 계립령(鷄立嶺), 즉 하늘재다. 문경과 충주를 잇는 이 재는 2천년이나 된 고갯길이다. 신라는 이 재를 넘어서 한강유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고구려의 온달장군은 계립령과 죽령 서쪽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산맥은 국가와 국가, 지역과 지역의 경계가 됐으며 산맥을 관통하는 고개는 군사적인 거점이 됐다. 히말라야와 알프스, 안데스산맥에도 수많은 고개가 있다. 이러한 큰 고개를 경계로 민족과 언어, 문화가 나누어진다.
대구분지는 남쪽 비슬산지맥으로 헐티재와 팔조령, 북쪽 팔공산지맥으로 한티재, 파계재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영권 위클리포유 대구지오 자문위원은 “대구에는 10여개의 구릉성 산지가 있다. 준평원단계의 구릉성 산지는 대구분지 안을 흐르는 하천에 의해 깎여나가고 남은 부분인데 이러한 지형을 잔구(殘丘·Monadnock)라 부른다. 잔구는 본리공원, 장기공원, 갈산공원, 두류공원, 달성공원, 어린이대공원, 범어공원, 대불공원, 침산공원, 연암공원 등 공원으로 개발돼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중구에 있던 연귀산과 아미산 등 일부 잔구는 건축토목공사로 도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 밖에 반고개·원고개·고려장고개·파도고개·달빗재·귀낙골고개·절단고개·작살고개·대왕재·큰고개·나팔고개·파군재·내동재·능성재·쉬일목·고모령·담티·솔정고개·청호고개·왕선재·팔조령·헐티·기내미재·송현·이현·팔현 등 크고 작은 고개 또한 이름만 남아있고 본디 자취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모두 고유의 사연과 유래가 있는 소중한 고갯길이다.
지명에 대한 유래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돼 오다가도 전승자가 세상을 떠나면 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잊어지고 묻혀버린다. 이에 위클리포유 대구지오팀이 그 편린(片鱗)을 모아봤다. 이번 주 위클리포유는 대구에서 사라진 잔구와 고개를 답사했다. 그리고 그 사연들을 취재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